[신종수 칼럼]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데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데

입력 2019-06-26 04:02

호스피스 시설 턱없이 부족, 편안하고 의미있는 임종 못해… 한국 죽음의 질 세계 하위권
산 사람뿐만 아니라 죽음 앞둔 사람에 대한 복지도 중요… 웰다잉 위해 시설 확충 힘써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찬송가를 부르며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고인에 대한 애도도 애도지만 죽음이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이 여사가 평소 좋아하던 시편 23편을 낭송한 뒤 찬송가를 부르자 이 여사는 따라 부르려 입술을 움직이다가 이내 마지막 호흡을 다했다고 한다.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황혼을 지나 어둠이 짙게 깔리는 듯한 풍경이 연상됐다.

그즈음 나는 딸이 학교 필독서라며 의무적으로 읽고 책꽂이에 꽂아 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루게릭병을 앓다 숨진 모리 슈워츠 미국 브랜다이스대 사회학과 교수에 대한 실화다. 모리는 세상을 떠나기 전 서너 달 동안 매주 화요일 문병을 온 제자 미치에게 살아감과 죽어감의 의미를 들려준다. 소설가 김연수는 죽음에 대한 어느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다. “겨울에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번 여름의 세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나는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역설. 이 역설을 너무 늦게, 죽기 직전에야 알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걸 잊지 말라는 라틴어 경구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인생에서 정말 가치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모리는 그것을 타인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할 시간이 없다. 사랑할 시간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우리는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있고, 용서를 구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잘 죽는다는 것(웰다잉)은 잘 산다는 것(웰빙)과 통한다. 그래서 죽음은 삶의 일부라고 했던가.

정부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의 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년)을 최근 발표했다. 호스피스를 이용한 사람은 필요로 하는 사람 10명 가운데 2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가 어렵다. 말기 암 환자는 10명 중 1명만 호스피스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병원들이 호스피스 시설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자가 워낙 많아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내년에 호스피스팀이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를 도입한다. 국립암센터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는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하기를 원하지만 대부분 병원 중환자실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서 사망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집단 수용하는 요양원의 경우 환자들의 자유가 제약되곤 한다. 온몸에 똥칠을 해도 정해진 날만 목욕을 시켜주는 곳이 많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가 진작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80세였던 어머니가 배가 이상하다고 해서 만져보니 묵직하고 단단한 것이 손에 가득 잡혔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나를 따로 부르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위암 말기라고 했다. 어머니한테는 아무 말도 안했고 어머니도 묻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의사와 상의해 수술이나 약물 치료는 하지 않고 통증만 완화시키는 패치 처방만 받았다. 어머니는 시골 형집으로 내려가 누워 지내다 어느 날 가정 예배를 마친 직후 돌아가셨다. 진단을 받은 후 두 달도 안됐다.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를 씻기고 돌보는 데 조카딸들도 정성을 쏟았다. 나는 불효스럽게도 일 때문에 어머니 임종을 못봤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주말을 이용해 내려가 옆에 누웠는데 어머니는 나를 어루만지며 내 걱정 말고 회사 생활 잘하라고 당부했다. 이것이 막둥이에게 한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는 것을 돌아가신 후에 알았다. 호스피스 제도는 없었지만 어머니가 의미없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신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고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인생을 마무리하길 원한다. 지금은 고령사회이고 죽음을 앞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호스피스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선진국은 10명 중 5명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연구소가 4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죽음의 질 조사에서 한국은 하위권인 32위를 차지했다. 우리는 죽음에 관해 좀처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정부는 표가 되는 산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의 복지는 외면한다. 그러나 복지는 삶과 죽음 모두에 적용돼야 한다.

신종수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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