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든지 떠나든지…” 외치자 콧대높은 성도들 충격

국민일보

“변하든지 떠나든지…” 외치자 콧대높은 성도들 충격

목회는 영권(靈權)이다 <13>

입력 2019-07-0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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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16년 11월 인천 연수구 교회에서 개최된 ‘50일의 기적’ 밤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나는 그런 영적 저항 앞에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사람을 모으려고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고 변화를 거부할 거면 다른 교회로 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목회자의 영적 권위 앞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성도는 고객이 아니라 비저너리(visionary)다. 목사와 꿈을 같이하고 마음을 같이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온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변화하든지 떠나든지 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콧대 높은 성도들이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사실 성도 욕심 없는 목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결심했다. 다 떠날지라도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그런데 이튿날부터 나오지 않을 듯한 사람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20일이 지나자 안수기도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티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남자 성도부터 강단 위로 불러냈다.

설교를 마치고 안수기도를 시작했다. 그때 대부분의 남자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런데 한 정형외과 의사 집사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손을 떼지 않고 기도를 계속했다. 목석같았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닌 이성적 신앙인이었다.

일단 멈추고 다른 사람부터 기도해 줬다. 20분간 기도를 하고 강단 위에 섰다. ‘그 집사에게 다시 안수해 주라.’ 주님의 말씀이었다. 마음이 좀 상했다. “의사면 의사지 조금 알고 배웠다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이성으로 판단하고 성령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왜 다시 기도해 줘야 합니까.”

그래서 소리 내어 다른 기도 제목을 놓고 성령님과 씨름하는데 ‘잔소리하지 말고 해 주라’고 하셨다. 순종했다. 조용히 다가가 앉아 있는 그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갑자기 ‘푹’하고 쓰러졌다. 그때 느꼈다.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20분 동안 그 집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주님만 아신다. 하지만 성령님께 순종했더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기도 후에 물어봤다. “왜 쓰러지셨습니까.” “목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 뜨거운 불이 내 몸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쓰러져 꼼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집사님은 완전 딴사람이 됐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고 일주일에 딱 한 번 나오던 사람이 지금은 매일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있다. 성가대에 들어가 성가대장으로 봉사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려면 개원을 해야 한다며 연수구에 병원까지 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이런 은혜를 퍼부어 주시는 이유가 뭘까.’ 고민해보니 교회 재정이 없을 때부터 진행했던 선교였다. 사실 선교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2009년 5월 송도 이안상가에 월세로 개척교회를 시작했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나름 열심히 기도하고 매일 두 번씩 예배를 드렸지만, 송도를 알면 알수록 높은 벽이 느껴졌다.

뒤늦게 들어간 교회라 종교부지 입찰 기회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종교부지 외에는 교회를 건축할 수 없었다. 무작정 땅 밟기를 했지만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 제가 무슨 일을 해 드려야 기뻐하시며 그 일만은 잘했다고 칭찬하시겠습니까.’ 기도는 그렇게 했지만 내심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때 문뜩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인 코피노가 생각났다. 그래서 다짐했다. “주님, 제가 코피노 고아원을 세우겠습니다.”

당장 월세 낼 돈도 마련하기가 힘겨운 상황에서 그냥 그렇게 기도했다. 그리고는 필리핀 세부에 있는 선교사님에게 연락했다. “선교사님, 고아원을 세울 수 있는 땅이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계약금은 고사하고 항공권을 살 돈도 없었다. 일단 땅 주인을 만날 날부터 정했다. 가기 이틀 전에 항공료가 생겼다. 땅을 보니 정말 적절한 곳이었다. 땅 주인과 가격 조정까지 마쳤다.

“패스터 김, 그럼 계약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오게 돼 계약금을 못 가져왔습니다. 한국에 가서 계약금을 만들어 다시 오겠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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