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어부] 말씀의 그물에 잡힌 나 쓸모없는 물고기라 버려지지 않게 하소서

국민일보

[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어부] 말씀의 그물에 잡힌 나 쓸모없는 물고기라 버려지지 않게 하소서

입력 2019-07-05 19:45 수정 2019-07-0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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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예수님은 어떤 기준으로 제자를 삼으셨을까. 열두 제자 중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어부였다.(막 1:16∼20)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똑같이 부르셨다. 그들은 모두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 4:18~22)

도마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디베랴 호수로 같이 갔다는 점에서(요 21:2) 어부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빌립도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요 1:43∼44)이라는 점과 벳새다가 ‘어부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갈릴리의 어촌이라는 점에서 어부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만약에 도마와 빌립이 어부였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절반이 어부였다.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의 ‘고기를 잡는 제자들’(1308~11년),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 소장.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낚던’ 어부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꿔 놓으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 낚는 어부는 제자를, 고기를 낚기 위해 던지는 그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의 그물에 잡히는 물고기는 사람을 상징한다.

복음의 그물 던지는 ‘어부’

예수님의 제자들 중 과반수가 어부였고 나머지는 세리와 혁명가 그리고 직업조차 밝혀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왜 주님은 세상의 엘리트들을 놔두시고 이들을 택하셨을까. 목회자들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해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훈련시켜 사용하신다”고 말한다. 성경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고 말한다.

세상엔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나서도 자신 있게 제자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들이 제자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미국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교회의 교육목사인 카일 아이들먼은 직설적으로 “그들은 그냥 팬(fan)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저서 ‘팬인가, 제자인가’(Not a fan)에서 그는 자신이 팬인가 제자인가를 진단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고백하는지 실제로 따르고 있는지’ ‘예수님에 관해서 진정으로 아는지’ ‘자신의 내면보다 밖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지’ ‘자기 힘을 믿는지,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등을 물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팬은 관람석에 앉아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이다. 선수들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고 최근 기록을 줄줄이 꿰고 있지만,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게다가 응원하는 팀이 자꾸 패하면 그토록 좋아하던 마음도 조금씩 식어간다. 심지어 다른 팀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예수님 주변에도 팬이 많다. 팬은 일이 잘 풀릴 때는 예수님을 응원하지만 반대 상황에 이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돌려 다른 선수에게 들러붙는다. 팬은 안전한 관람석에 앉아 응원만 할 줄 알지 경기장에서 필요한 희생과 고통은 조금도 모른다. 예수님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어도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카일 아이들먼의 ‘팬인가, 제자인가’ 중)

성경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 역시 팬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이튿날에도 그 장소로 나왔을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미 호수 건너편으로 떠난 뒤다. 그들이 예수의 일행을 겨우 따라잡았을 땐 배가 고파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이때 예수님은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더 이상 떡은 없고 오직 예수님만 남았을 때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성경은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6)고 말한다. 팬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는 이들이다. 온갖 혜택을 바라며 예수님의 주위로 몰려들지만, 자신을 희생할 만큼 그분과 가깝지는 않다. 나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군중 속의 한 명이 아닐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진정한 제자란 어떤 사람일까.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츠가 1896년에 쓴 소설 ‘쿠오바디스’의 마지막 부분이 이를 상징적으로 설명해준다.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지자 신자들의 간청으로 로마를 탈출하려던 사도 베드로가 새벽 여명 속에 십자가를 메고 걸어가는 그리스도를 환상 속에서 보고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는다. 그리스도는 “네가 나의 어린양들을 버리니, 나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남기고 사라진다. 베드로는 발길을 돌려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던졌던 이 절박하고 심오한 물음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한 길이다. 예수님이 가신 그 방향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제자이다. 카일 아이들먼은 우리 자신이 제자로서 정체성을 가질 때만이 예수의 제자로 살 수 있음을 강조한다. 신앙의 연수(年數)가 아닌 헌신의 깊이가 중요하다.

작자 미상의 기도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당신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내던져짐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누구인가. 제자인가 팬인가.

어부에 하나 더
물고기와 그리스도인



물고기는 로마의 카타콤(Catacombs)의 프레스코 벽화에서 발견된 후 고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됐다. 물고기란 뜻의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의 의미가 있다. 예수(Ιησoυs), 그리스도(Χριστοs), 하나님(θεοs), 아들(Υιοs), 구세주(Σωτηρ)의 첫머리 글자만 모아보면 익투스가 된다.

초대 교회 시대에(주후 64년부터 250년간) 로마는 교회를 박해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 등에 숨어 지냈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때 땅에 물고기를 그렸다. 한 사람이 물고기의 반을 그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그려 넣음으로써 서로의 신앙이 하나임을 확인했다. 카타콤은 공동묘지인 동시에 일종의 지하 도시로서 외부의 침략을 피해 은신할 수 있는 미로였다. 미로에서 길을 찾는 표식이 바로 물고기 모양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예배 장소를 찾아 왔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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