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목사가 정치를?… 선비 목사 이원영 보라”

국민일보

[미션 톡!] “목사가 정치를?… 선비 목사 이원영 보라”

입력 2019-07-09 00:02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일부 목회자의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을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한국교회 원로들이 나서 ‘염려와 통회’를 금치 못한다고 했지만, 한국정치사에서 목사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정치 참여가 빈번했음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1952년 이승만 장로 대통령, 함태영 목사 부통령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의 마지막 러닝메이트였던 이기붕도 권사 출신입니다.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최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수련회에서 목사의 공인(公人)됨을 이야기하며 선비 목사 이원영(사진) 전 총회장을 소개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들과 정반대의 길을 걸은 목회자입니다.

이 목사는 3·1운동 당시엔 선비였습니다. 유림의 일원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옥에 갇힙니다. 거기서 안동교회 조사였던 이상동을 만나 신앙을 접합니다. 이후 평양신학교를 나와 목사안수를 받고 경북 안동 안기교회(현 서부교회)에서 목회합니다.

이 목사가 후대에 주목받은 건 38년 안기교회에서 쫓겨나면서부터입니다. 신사참배에 반대해 교회에서 쫓겨나고 교단에서 출교 처분까지 받았습니다. 신사참배뿐만 아니라 조선교육령과 창씨개명까지 거부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목사는 가족과 함께 산골짜기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45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6년여를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지냅니다. 그러면서도 가족들과 매일 예배를 봅니다. 그는 “목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선포를 중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를 다 빼앗기고 가족만 앞에 두고도 설교를 계속한 것입니다.

장로교단은 38년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습니다. 예배에 앞서 궁성요배와 황국신민서사를 했습니다. 우상숭배를 한 뒤 찬송을 부르던 뼈아픈 역사입니다. 42년엔 일제 해군에 ‘조선 장로호’ 전투기까지 헌납했습니다.

이 목사는 8·15광복을 맞이할 즈음, 정치가로 나설 기회를 맞이합니다.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가 경북 안동지역 위원장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 목사는 즉각 거부하며 “신사참배로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건준의 제안을 뿌리친 뒤에는 지역교회를 순회합니다. 하얀 두루마기 한복 차림으로 강단에서 성경을 강해하며 무너진 교회의 신앙을 회복하자고 말합니다.

이 목사는 54년 장로교 총회에서 총회장에 추대됐습니다. 총회장으로서 그는 38년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신사참배 결의를 강행한 교단 지도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로 분열된 장로교의 화합을 위해 끝까지 힘썼습니다. 목회자의 정치력은 바로 이런 분야에서 발휘돼야 합니다. 포용과 화합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