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영훈] 그가 이혼을 결심한 까닭은

국민일보

[청사초롱-김영훈] 그가 이혼을 결심한 까닭은

입력 2019-07-10 03:59

10여 년 전 미국에 거주할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부부 세미나’에 참석했다. 강연자로 나선 상담 전문가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갖는 공통적인 불만이 세 가지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있을까요?” 강연자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부부를 상담해 얻은 경험적 자료라고 하니, 나를 포함한 모든 청중은 귀를 쫑긋 세우고 강연자가 밝힐 세 가지 불만을 기다렸다.

그 세 가지는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강연자가 밝힌 남편들의 아내에 대한 세 가지 불만은 ‘밥’ ‘섹스’ ‘청소’였다. 아내가 식사 준비에 소홀하다는 것이고, 아내가 성관계를 회피해서 원하는 만큼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며, 깨끗하게 잘 정리된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왜 남편들은 밥과 섹스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된 집에서 쉬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이 세 가지 불만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세 가지 불만이 ‘생물학적 욕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관련한 강연을 할 때마다 왜 남자들이 생물학적인 욕구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런데 강연할 때마다 발견하는 재미있는 현상 하나는 이 불만을 듣고 난 후에 남자들과 여자들의 반응이 색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남성들은 큰 위로를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만의 불만이라고 참고 치부해 버렸던 것들이 자신만의 불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남편들도 같은 문제로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놀라는 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배신감을 느끼며 수군거린다. “그놈의 밥 밥 밥! 지겹지도 않나?” “섹스, 역시 그거였구나!” “내가 종일 집에서 노는 줄 아나 보지?”

어찌 보면 남자와 여자가 모두 놀란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한 집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식을 낳으며 오랜 세월 동안 부부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남편의 불만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남편들도 아내의 불만을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왜 아내들은 남편의 불만을 잘 모를까? 남편들은 답답하리만큼 본인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일도 그렇지만 나쁜 일은 더더욱 표현하지 않는다. 이런 경향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체면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남편이 얼마나 지질하고 못났으면 밥, 섹스, 휴식 같은 생물학적 욕구에 집착해 아내에게 불평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심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연구 주제 중 하나는 ‘남녀의 차이’다. 남자와 여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신기할 정도로 다르다. 생물학적 욕구에 민감한 정도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고 사랑을 느끼는 방법도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자존심과 체면을 지키느라 많은 부부는 성차에서 비롯된 자신의 불만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성차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차별과 성차는 완전히 구분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유가 어떻든 안타까운 사실은 부부가 서로의 불만을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이 비록 부부 간의 평화를 유지하고 싶은 좋은 동기에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누구도 배우자의 불만을 알 수 없다. 이해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신이 참고 또 참으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당신이 배우자에게 진심을 이야기하게 되는 그 순간, 당신의 배우자는 더없이 당황할 테고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믿을 것이다.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진실로 위한다면 지금이 바로 속내를 털어놓을 때다.

김영훈(연세대 교수·심리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