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진각] 문화예술의 위험한 양극화

국민일보

[기고-김진각] 문화예술의 위험한 양극화

입력 2019-07-10 04:02

대중의 관심을 붙들어 매는 영역엔 문화예술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화예술 관련 소식이 ‘뉴스의 홍수시대’의 한 축을 점령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이목을 집중시킨 문화예술 이슈가 여럿 있었지만, 여론을 들썩이게 했던 것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영국 웸블리 구장 공연 전석 매진 등 BTS(방탄소년단) 열풍, 방송인 김제동의 ‘지방자치단체 1650만원 고액 강연료’ 논란 등이다. 이 중 일부는 정치적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충돌하기도 했다. 문화예술이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학계의 단골 논의가 새삼 확인된 지점이다.

3가지 문화예술 핫이슈에서 묘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슈의 주체가 모두 대중문화이거나 대중예술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대중문화가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 이슈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예술을 의미하는 대중문화의 위력은 문화산업의 지형이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부터 가속도를 내고 있다. TV 주도의 미디어 시장은 모바일과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넘어간 상태다. 미디어의 소비 행태가 TV에서 모바일로, 주파수와 케이블에서 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소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흔히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한 미디어콘텐츠 제공 서비스)로 불리는 이 같은 미디어 빅뱅의 중심에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있다. 1940년대에 자신의 대표적 저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화산업을 겨냥해 이윤의 도구가 됐다며 대중 기만이라고 강력 비판했던 독일의 사상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론은 지금 시대엔 무용지물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대중예술의 기세는 OTT와 소셜미디어 등으로 재편된 미디어 소비행태 변화를 등에 업고 질주를 거듭할 게 분명하다.

문제는 대중예술에 원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순수예술(기초예술)이 힘을 못 쓰는 현실이다. 대중예술의 성장만큼 연극, 무용, 클래식 음악 등 순수예술 역시 동반성장하는 게 맞지만 시장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단적인 사례는 예술인들의 수입에서 목도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는 예술인의 수입 명세서나 마찬가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인의 예술 활동 개인 수입은 방송연예 분야가 연평균 2065만원으로 연극, 무용, 클래식 음악 분야를 많게는 1000만원 이상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술 활동 개인 수입이 아예 없다’는 예술인 비율이 28.8%나 되고, ‘500만원 미만’ 27.4%, ‘1000만~2000만원’ 미만 13.2%라는 수치는 문화예술인 삶의 빈곤성을 투영한다. 어찌 보면 대중예술의 호황은 일부 예술인에게 국한될 뿐 대다수 예술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정부가 최근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융자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생활이 어려운 예술인들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최대 500만원의 생활안정자금과 최대 4000만원의 전월세 주택자금을 대출하고, 학자금 결혼자금 의료비 부모요양비 등도 저리로 빌려준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융자 대상을 ‘예술인복지법’상 예술 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으로 국한한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일정 기간 예술 활동을 했거나 예술 활동 수입이 있어야만 융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예술상품의 특성상 유명 예술인을 제외한 대다수 예술인이 정기적인 작품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꾸준히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한 예술인들은 융자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정책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미디어의 급변으로 예술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시대인데, 융합 등의 시도를 통해 시너지를 추구해야 할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종사자 간의 경제적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예술의 존재 이유 중 삶의 풍요가 으뜸이라면 문화예술 정책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조화와 균형에 맞춰져야 한다. 사회 각 분야가 양극화로 몸살을 앓는 판에 예술까지 ‘빈익빈 부익부’로 치닫는 건 문화예술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국가로서도 불행이다.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