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실 목사 찾아가 “안수기도 해주세요”

국민일보

최자실 목사 찾아가 “안수기도 해주세요”

홍예숙 사모의 성경적 신유의 은혜 <2>

입력 2019-07-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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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숙 서울 대망교회 사모가 지난달 서울 송파구 석촌동 교회에서 금요치유집회를 인도하고 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나를 살살 달래 1977년부터 대구 주암산기도원에 데려가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1주일 정도 기도원에 있었다. 그러다 아예 기도원에 머물게 됐다. 그날 눈물이 많이 났다. “엄마도 나 싫어? 왜 엄마는 날 기도원에 갖다 놔? 학교 가야 하는데….”

어느새 기도원이 내 집처럼 됐다. 여자 기도원 원장님을 비롯해 많은 이들은 은혜받는 데 온통 마음이 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어떻게 하면 놀 수 있을까, 어떻게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을까만 궁리했다. 그러면서 점점 기도원의 사고뭉치가 됐다. 무도 뽑아 먹고 고구마도 많이 구워 먹었다. 나를 못 잡게 하려고 원장님 신발을 재래식 변소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래도 원장님은 나를 잘 대해 주셨다. “왜 이렇게 잘 대해 주실까?” 이 말을 원장님께서 들으시고 “너 은혜 받고 하나님 만나라고”라며 웃으셨다.

원장님에겐 자폐증을 보이는 아들이 있었다. 기도원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 외에는 그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랬기에 원장님은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셨다. 그래서 나를 애틋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억지로 기도회에 참석하면 원장님은 “많이 울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울면 기도줄이 잡힌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냥 멀뚱멀뚱하게 바라만 봤다.

그러다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얼른 수돗가로 내려가 수건에 물에 적셨다. 내가 앉은 자리 앞에서 수건을 짰다. 떨어진 물을 눈에 찍어 바르고 옷에도 뿌렸다. 눈물이 굉장히 많이 난 것처럼 보였다. 원장님께 보이고 싶어 원장님 들으라고 창쪽을 보고 “주여”라고 고함을 쳤다. “주여, 주여, 주여” 몇 번을 크게 불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님께서 나의 마음을 노크해 주신 것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정말로 눈물이 핑 돌았다.

기도원 생활은 지루했다. 하루는 피아노를 두드리다가 피아노 실력은 안 되고 해서 찬양만 신나게 불렀다. 그때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원장님이 내 찬양소리를 듣고 계셨던 것이다. 원장님은 그 후로 내게 특송을 많이 시키셨다. 나는 마치 찬양을 잘하는 사람이 된 양 기분 좋게 불렀다.

부를 때마다 사람들도 많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찬양을 부르고는 밖에 나가 놀았다. 그 시간만큼은 자유였다. 야단칠 원장님도 없고 다들 예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기도원의 무는 정말 많이 뽑아 먹었다. 마치고 나면 여지없이 야단을 맞았다. 무 뽑아 먹은 죄, 예배 빼먹은 죄, 기도 안 한 죄… 또 죄인이 됐다.

한번은 화가 나서 “원장님이 죄인이지 나는 죄인이 아니에요”하고 고함을 질렀다. 원장님은 나를 야단치니까 죄인이고 매일 기도하면서 원장님 입으로 죄인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도 죄인이네. 날 이렇게 만드셨으니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나는 의인이다’라는 생각에 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저 사람을 죄인 만들었다 하며 마음이 굳어져 갔다. 그러나 찬양할 때만큼은 내가 죄인이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아 하나님의 은혜로” 찬양을 부르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른이 부르는 찬송가밖에 아는 것이 없었지만 좋았다. 찬양을 하면 기도가 됐다. 집회에도 참석하고 싶어졌다. 내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왔다.

주암산기도원 아래 시설 좋은 기도원이 하나 있었다. 내가 밤을 꼬박 새워 기도했던 날, 그다음 주에 훌륭한 강사님이 그 기도원에 오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여자분이었다. 너무 인자해 보였고 쓰고 있는 모자도 멋져 보였다. 당시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름이 순복음중앙교회였다. 조용기 목사님과 함께 사역하시던 최자실 목사님이었다.

그 부흥회 자리에 참석했는데 최 목사님이 집회를 마치고 안수기도를 해 주셨다. 그런데 나에겐 안수기도를 해 주지 않았다. 서운했다. “강사님, 저 안수기도 못 받았는데요.”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들으시고 최 목사님이 “네 머리 위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안수기도해 주셨단다. 너는 내가 부럽니? 나보다 더 놀랍게 쓰실 줄 믿는다. 계속 기도해라” 하시고는 나가셨다. 기도가 되지 않았다. 안수기도를 못 받았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서 강사님 방으로 안수기도를 받으러 갔다. 내가 머물고 있던 기도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강사님을 잘 아는 사람처럼 들어갔다. 집사님들도 그냥 보고만 계셨다.

“안수기도 받으러 왔니?” “네.” 최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너는 될 놈이야” 하시면서 안수기도를 해 주셨다. 방언으로 기도하시는데 축복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후로는 그 부흥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몰래 강사님 방에 들어갔다고 야단맞을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대신 산으로 올라갔다. 그때부터 나의 산기도가 시작됐다. 내 나이 열 살 때였다.

홍예숙 사모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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