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한국인 예수, 흑인 인어공주

국민일보

[한마당-이흥우] 한국인 예수, 흑인 인어공주

입력 2019-07-11 04:05

장 클로드 라마르 감독의 인디영화 ‘컬러 오브 더 크로스(Color Of The Cross)’가 2006년 10월 미국 7개 도시에서 상영됐을 때 논란이 많았다. 영화에 나오는 예수가 흑인 유대인이어서다. 할리우드에서는 예수 하면 으레 금발에 푸른 눈의 백인으로 묘사했는데 흑인인 라마르 감독은 이 작품에서 고정관념을 허물었다. 그는 당시 “난 예수가 흑인이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 눈에는 예수가 백인, 라틴아메리카인 심지어 아시아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라마르 감독 말대로 예수를 아시아인으로 묘사한 인물이 있다. 한국화의 거장 운보 김기창 화백이다. 운보는 예수의 생애를 그린 작품 30점을 남겼는데 이 작품에 묘사된 예수는 한국인이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예수라니, 작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 예수는 물론 열두 제자도, 예수가 탄생할 때 찾아온 동방박사도 모두 한국인이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 나타난 천사는 선녀로 탈바꿈했다.

미국인이 좋아하는 바비인형이 60년 전 처음 탄생했을 때 백인 일색이었다. 크리스티라는 이름의 흑인 바비가 등장한 건 그로부터 9년 후다. 이후 아시안,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바비인형이 쏟아져 나왔다. 다인종·다문화 미국사회에서 다양성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은 늘 백인 몫이었다.

할리우드에서 흑인 예수에 이어 흑인 인어공주가 탄생한다. 내년 개봉 예정인 디즈니의 실사판 ‘인어공주’에 19살의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주인공 애리엘역에 캐스팅됐다. 디즈니가 1989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애리엘은 빨간 머리 백인이었다. 베일리의 캐스팅을 두고 미국 내에서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덴마크 작가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가 원작인데 흑인 인어공주가 웬말이냐는 거다. 외국에서 홍길동을 영화화했는데 한국인이 아닌 백인이나 흑인이 홍길동이라면 어색하긴 하다.

디즈니는 그러나 “덴마크인 중에 흑인도 있다. 덴마크 인어도 흑인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 때 원작의 설정을 무시하고 배역을 백인으로 바꾸는 것을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는 블랙워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시나브로 높아지고 있어 ‘코리아워싱’을 볼 날도 올 듯싶다.

이흥우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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