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입력 2019-07-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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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사람들 대화에서 자주 듣게 되는 표현 하나를 알게 됐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이란 표현이다. 살펴보니 의외로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뭔가 열심히 말을 전하고 있지만,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을 때 “그게 아니고 내 말은” 하며 거듭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표현이다. 듣고 싶은 말보다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경우 이런 반응이 나온다.

이 표현은 상대방의 말에 대해 먼저 ‘아니’라고 부정한 다음, 접속부사 ‘그러니까’를 사용해서 하고 싶은 ‘내 말’만 이어서 전하는 일방적 화법이다. 말하는 이로 하여금 할 말 없게 만드는 닫힌 화법이다. 이런 표현을 자주 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썩 유쾌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열심히 그의 말을 들은 내 말이 우선 아니라는 부정을 당하고 다시 그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하는 곤욕을 치러야 한다. 자기 말은 들어주길 원하면서 정작 자기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뜻을 내포한 표현이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이란 표현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저마다 하고 싶은 제 말만 가득하다. 대화가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들어줘야 하는데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제 말만 하려 든다. 제대로 들음 없이 말하는 것은 늘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다. ‘공감 연습’의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은 책에서 ‘공감의 구조’라는 연구를 바탕으로 이렇게 말한다. “공감은 건축과 디자인으로 작업대와 전기를 갖춘 집이나 사무실처럼 우리가 짓는 건물임을 암시한다.”

제이미슨은 또 “한자에서 ‘듣다’를 뜻하는 글자 청(聽)자는 귀와 눈을 뜻하는 글자와 온전한 수평선을 뜻하는 일(一)자, 갑작스런 급습과 마음의 눈물방울을 뜻하는 심(心)자 등 많은 부분으로 건축된 하나의 구조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공을 들어야 비로소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감(感)이 생긴다는 것이다. ‘들음’이라는 행위가 하나의 견고한 건축물을 세우는 것처럼 세심하게 공을 들여야 하는 일임을 배운다.

성경에서 잘 듣는 사람의 본보기로 흔히 사무엘을 꼽는다.(삼상 3:10) 그의 이름 속에 이미 히브리어로 ‘듣다’란 의미가 들어있다. 그는 이름만큼 듣는 데 뛰어난 사람이었다. 솔로몬도 지혜를 구하는 그의 유명한 기도에서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을 때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다.(왕상 3:9) 지금 우리 시대 역시 ‘듣는 사람’ ‘듣는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보이지 않는”(삼상 3:1) 시대에, 듣는 사람 사무엘의 등장으로 비로소 말에 힘이 생겼다.

‘가만히 들어주었어’란 그림책이 있다. 이 책의 꼬마 주인공은 열심히 레고로 만든 멋진 성이 난데없이 무너져버리자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때 닭과 곰, 코끼리와 하이에나, 타조 캥거루 뱀이 연달아 와 꼬마의 슬픔을 해결할 수 있는 숱한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그런데도 꼬마 주인공의 슬픔은 더 깊어지기만 한다. 그러자 조용히 토끼가 다가와 꼬마 곁에 말없이 가만히 있어 준다. 주인공이 먼저 말을 걸 때까지. 토끼는 자기 말을 하지 않고 꼬마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침내 다시 용기를 낼 때까지 같이 있어 준다.

이 책과 함께 우리는 욥기로, 또 욥의 친구 세 사람을 통해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사려 깊게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일인지도 배울 수 있다. 공감이란 감상적으로 대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상대방의 아픔을 같이 느끼는 행위는 깊이 배우고 훈련해야 조금이나마 겨우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알지 못해 쩔쩔매며 그냥 곁에 있어 주는 마음을 말한다.

지도자는 뭔가 말을 많이 하는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뭔가 많이 들어야 하는 자리임을 배운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상대방의 들음을 방해하기보다, 우선은 “아, 그래서, 네 말이” 하며 끄덕거리는 반응으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듣고 싶은 그 말이 아니더라도 우선은 잘 들어봐야겠다. “아, 그래서, 네 말이” 하고.

김주련 대표(성서유니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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