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경택] 북한 목선 사태는 자업자득

국민일보

[세상만사-김경택] 북한 목선 사태는 자업자득

입력 2019-07-12 04:02

강원도 삼척에서 일어난 북한 목선 ‘입항귀순’ 사건은 예상 밖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군 내부에선 “북한 어선 하나 때문에 군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군 당국은 이 목선 정국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무장한 북한 선원 4명을 태우고 내려온 목선이 우리 군 지휘부 누구의 옷까지 벗길 수 있을지 예측하기도 어렵게 됐다.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을 이렇게까지 키운 책임을 청와대와 군 당국이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한 목선 입항 다음 날인 지난 6월 16일 군 관계자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관련 사안에 대해 확인 중”이라거나 “통일부나 해경에 문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때는 북한 선원 4명 중 2명이 귀순 의사를, 나머지 2명이 귀환 의사를 밝힌 바로 다음 날이었다. “‘북한이 선원들을 억류하지 말고 즉각 돌려보내라’는 주장을 할 수 있으니 당시엔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었다”는 정부 측 해명은 비판 여론이 커진 뒤에야 나왔다.

군 당국은 처음에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합동참모본부는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장병들을 엄호하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축소·은폐 의혹이 증폭된 것은 삼척항에 배를 대놓고 ‘무사입항 기념사진’ 찍듯 서 있던 선원들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 뒤였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합참 발표를 스스로 뒤집으며 경계작전 실패를 인정했다.

사건은 군 당국의 안이한 대응을 질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왜 삼척항에 입항한 사실을 쏙 뺀 채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고만 발표했느냐”는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목선 입항 6일 뒤인 지난 6월 21일 “매뉴얼에 따라서 신변을 철저히 보호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인근’이라는 표현은 군에서 주로 많이 쓰는 용어라고도 주장했다.

귀순자 신변 보호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귀순 여부와 별도로 이들이 어떻게 남측으로 넘어왔는지 정확하게 발표하지 않았던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 선원 2명이 북으로 돌아간 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 이유는 미스터리다. 적어도 ‘삼척항 인근’이라는 모호한 표현에는 유리그릇처럼 언제 깨질지 모르는 남북관계를 감안했거나 경계실패 책임을 흐리려는 ‘미필적 고의’ 이상의 무언가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 말이다.

축소·은폐는 없었다는 조사 결과로도 의혹을 잠재우지 못했다. 청와대가 축소·은폐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이미 결론 내렸는데, ‘문민통제’를 받는 군이 다른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국방부 감사관을 단장으로 편성된 합동조사단은 군 지휘부에 ‘인근이라는 말을 누가 쓰라고 지시했느냐’고 묻지 못했다. “민간인이 신고한 사안을 축소·은폐할 수 없다”는 해명 역시 ‘민간인도 아는 사실을 왜 여론에 떠밀리듯 뒤늦게 발표했느냐’는 반론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국회에는 발견 장소를 ‘삼척항 방파제’라고 명확하게 보고했다는 군 당국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이런 내용은 일부 국회의원들에게만 보고된 것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에 대해 “군이 대북정보 유출 우려로 내용을 흐려서 발표하는 관행이 있다고 한다. 국민 눈에서 보면 몹쓸 짓”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야당의 사퇴 요구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국방 수장의 교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군 해안·해상 경계시스템이 온전할 수는 없다. 문제는 첫 스텝부터 꼬인 목선 사건이 북한군을 잡아야 할 경계작전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전직 국방부 당국자의 촌평은 이렇다. “북한 목선을 잡자고 들면 현재의 군사력과 국방 예산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국방 자원의 낭비다. 사냥개를 똥개로 썼던 전례를 21세기에 또 반복해야 하겠나.”

김경택 정치부 차장 ptyx@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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