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가족성 고지혈증 있으면 젊어도 심장질환·뇌졸중 안심 못해

국민일보

[And 건강] 가족성 고지혈증 있으면 젊어도 심장질환·뇌졸중 안심 못해

되물림 되는 ‘콜레스테롤’

입력 2019-07-16 04:05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이상학 교수가 가족성 고지혈증 의심 환자의 발뒤꿈치를 살펴보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심혈관질환에 걸릴 수 있는 위험건강한 사람보다 10배 정도 높아
나이 어리다고 치료 늦추면 안돼… 방치해 심해지면 돌연사할 수도


직장인 A씨(33)는 2년 전 혈액검사에서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저밀도지단백(LDL)콜레스테롤’ 수치가 500㎎/㎗ 넘게 나와 깜짝 놀랐다. 정상 기준(130㎎/㎗ 미만) 보다 4배 가까이 높았던 것. 평소 기름진 음식을 즐기지 않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편으로 나름 건강에 자신 있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의사는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고지혈증)’이 의심된다”며 가족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와 삼촌들의 LDL콜레스테롤 수치도 200㎎/㎗ 이상으로 높게 측정됐다.

A씨는 10대 후반에 심장혈관(관상동맥)이 좁아져 생긴 협심증으로 수술을 받은 적 있었다. 당시에는 가족성 고지혈증과의 연관성을 알지 못했다. 의사는 “가족성 고지혈증이 있으면 심장질환, 뇌졸중 등 발생 위험이 높고 심한 경우 이른 나이에 돌연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 속에 기름기(지질)가 많은 고지혈증은 육류·지방질 섭취가 많은 50대 이상에서 주로 나타나지만 A씨처럼 젊은 나이에 초고위험 수준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바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해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되물림되는 ‘가족성 고지혈증(FH)’이다. 문제는 자신이 가족성 고지혈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방치하다 화를 키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심·뇌혈관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에야 인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몸 속 콜레스테롤의 25%는 음식을 통해 섭취되고 나머지는 간에서 만들어진다. 콜레스테롤은 ‘지단백’이라는 입자를 타고 혈관 속을 돌아다니는데, 결국 간으로 돌아와 배출된다. 이 때 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되는 것이 ‘저밀도지단백수용체(LDLR)’이다. 콜레스테롤 배출을 위한 하수도 입구인셈이다. 가족성 고지혈증 환자는 이 LDLR을 만드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이상학 교수는 15일 “LDLR을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인해 손상되면 LDLR을 만들지 못하며 결과적으로는 하수도 입구가 막혀 배출되지 못하고 콜레스테롤이 피 속에 축적되고 떠다니는 꼴이 된다”고 설명했다.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많이 쌓이면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훨씬 커진다.

이 교수는 “연구결과 가족성 고지혈증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10배 정도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나이부터 콜레스테롤 농도가 올라가는 경우도 흔하며 혈관이 고농도 콜레스테롤에 평생 노출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혈관질환이 20년 이상 빨리 생긴다.

가족성 고지혈증 중 ‘이형 접합’ 유형(부모의 한쪽으로부터 돌연변이 유전자 물려받음)은 인구 500명 당 1명 꼴로 발생한다. 국내 유병 환자의 실태 파악은 안돼 있지만 인구 5000만명 기준으로 할 때 10만명 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 모두에게서 이상 유전자를 물려받는 ‘동형 접합’ 유형은 훨씬 드물어, 국내에 30~40명 정도 보고돼 있다.

국제 기준으론 혈액검사에서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190㎎/㎗(총콜레스테롤은 300㎎/㎗ 이상) 넘게 나오고 부모 등 가족 가운데 심혈관질환을 앓거나 그들의 콜레스테롤 농도가 특이하게 높다면 가족성 고지혈증을 의심해야 봐야 한다. 한국인 대상 조사에선 가족력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LDL 수치가 225㎎/㎗을 넘으면 유전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LDL 수치 외에 가족성 고지혈증을 의심할 증상이 바로 발뒤꿈치나 팔꿈치, 무릎 뒤에 나타나는 ‘황색종’이다.

가족성 고지혈증이 있으면 검은 눈동자 주변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하얀 띠 형태로 보이거나(왼쪽), 발뒤꿈치 등 인체 접히는 부위에 혹 같은 황색종이 생기기도 한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한기훈 교수는 “황색종은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LDL콜레스테롤이 인체가 접히는 부위에 쌓여 생긴다”면서 “아킬레스건을 좌우로 만졌을 때 두껍게 느껴지거나 무릎 뒤에 진주알 모양의 혹 같은 게 튀어나와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일 경우 눈의 검은동자 주변에 하얀 띠가 끼기도 한다.

가족성 고지혈증은 부모 중 한 쪽만 병이 있더라도 자식의 50%가 물려받는다. 따라서 가족 가운데 이 질환을 진단받으면 부모, 형제, 자녀 전체가 혈액검사를 받는게 좋다.

이상학 교수는 “취학 전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나이라도 돌연변이가 유전된 아이는 콜레스테롤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흔하고 심혈관질환 위험도 높다”면서 “어리다는 이유로 치료를 늦추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치료는 일반 고지혈증 치료약인 스타틴 제제로는 잘 안 듣는 경우가 많아 근래 도입된 신약(PCSK9억제제)을 병용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동형 접합’ 유형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돼 다수인 ‘이형 접합’ 환자들은 경제적 부담이 큰 만큼, 건보 확대 목소리가 높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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