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로교회 정치제도 회복 위한 제언

국민일보

[기고] 장로교회 정치제도 회복 위한 제언

입력 2019-07-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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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교파는 장로교회다. 장로교회는 감독이 다스리는 감독 정치, 혹은 회중이 다스리는 회중정치와 달리 교인들의 추천을 받은 ‘다스리는 장로(ruling elder)’와 목회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인 목사가 당회를 구성한 대의정치 제도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장로교회의 정치제도가 바르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교회 분쟁이나 다툼이 교회 안에서 처리되고 다스려지기보다는, 세속 법정의 판단을 받고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이미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과 허물이 완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고전 6:7). 이런 환경 가운데 필자는 현 장로교 정치에서 개혁이나 회복이 필요한 부분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치리회 3심제의 회복이 필요하다. 3심제는 장로교 정치의 분명한 특성이자 핵심이다. 모 총회 교회정치 제97조는 치리회 구분을 이렇게 규정한다. “치리회는 당회 노회 총회로 구분하며, 모든 치리회는 목사와 장로로 조직하고, 당회 노회 총회로 순차대로 상소한다.” 여기서는 전통적 장로교 정치의 치리 기관인 ‘대회(synod)’가 삭제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총회의 교회정치에 따르면 “대회는 그 조직을 1 지방 안 모든 노회(3개 이상 노회됨을 필요로 한다)를 담당하는 회니, 각 노회에서 파송하는 총대 목사와 장로로 조직하되 목사와 장로는 그 수를 서로 같게 한다”고 규정한다. 특히 대회의 권한과 직무를 규정한 제4조 8항은 “대회에 제기한 상고 고소 문의의 안건이 교회의 도리나 헌법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면 대회가 최종심의회가 된다”고 명시한다.

이 규정은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법으로 총회의 권한을 제한하는 장점이 있다. 이는 장로교 정치를 규정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지혜이다. 그러나 대회가 없는 치리회의 교회 재판 건은 2심제가 되고 만다. 2심제는 두 가지 위험 요소가 있다. 하나는 교회 직원의 재판 건 데 관해 당사자가 노회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곧바로 총회에서 최종 심의가 이루어지기에 혹여 교권주의자들의 정치적 판단에 휘둘릴 위험이 크다. 나머지는 2심제 부작용으로 자신의 안건에 대해 정당한 판결을 받고자 사회 법정에 호소하는 일로 진행될 수 있다. 이런 위험 요소들은 장로교 정치의 핵심인 3심제로 회복될 때 해소될 수 있다.

둘째, 집사 직분에 대한 올바른 개념 회복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에는 집사 직분을 목사와 장로보다 서열상 하등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유교적 전통을 가진 한국교회 환경에서는 당연시되고 만연돼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신자는 관습상 서리집사가 시간이 흐른 뒤 안수집사가 되고 다시 시간이 흐른 뒤 장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적 가르침과 장로교 교회정치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집사의 직분은 제31조에 명시된 것처럼 항존직이다. 항존직이란 항상 존재해야 할 직분을 말한다. 31조는 “교회에 항존할 직원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이다(행 20:17, 28, 딤전 3:1~13, 딛 1:5~9)”라고 규정한다. 집사 직무가 항존직인 까닭은 성경에서 집사의 자격 조건과 직무들이 명백히 열거돼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교회 생활을 관리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사직은 그 특성상 봉사의 직무로 ‘당회의 감독과 권한 아래’에 있다.

셋째, 치리회 결정들에 대한 올바른 자세 회복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 분쟁과 재판에 있어서 상급 치리회 결정은 종종 무시되고 있다. 즉 당사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은 반기지만, 그 반대 경우엔 교회 탈퇴와 같은 행정보류를 불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문제 해결은 자신들의 관점이 아니라 공교회가 진행한 절차와 결정, 그리고 그 시행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치리회의 모든 법령과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통제돼야 할 뿐 아니라, 지역교회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통치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공교회의 결정이 성경적 고백임을 시인하고 수용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박태현(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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