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나이 수업’] 인생의 과제는 순간순간을 성실히 사는 것

국민일보

[100세 시대 ‘나이 수업’] 인생의 과제는 순간순간을 성실히 사는 것

입력 2019-07-19 19:56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일러스트=이영은>

이번에도 역시 오지랖이었다. 언니가 교회 어른 네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는 소식에 설거지를 책임지겠다며 달려갔다. 내 속내를 고백하자면 7, 80대 어르신들의 소소한 대화를 가까이에서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남녀가 따로 자리를 잡는 바람에 남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었지만, 여자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우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우선 70대 초중반과 80대 초반이신 네 분은 각기 불편한 몸으로 고생하고 계셨다.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교회에서도 열성적으로 연주하고 지도해주시던 분은 몸이 굳고 떨리는 파킨슨병이 꽤 진행된 상태였다. 한 분은 귀가 잘 안 들려서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 크게 말씀드려야 했고, 또 한 분은 다리가 몹시 불편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외출이 힘들어 보였다. 마지막 한 분은 속 어딘가가 탈이 났다며 바싹 마른 몸에 기운이 없어 이제는 새벽기도도 못 나간다고 한숨을 쉬셨다.

여성들은 공부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에 고등교육을 받고 넉넉한 살림살이에 자녀들도 잘 키워내신 것으로 짐작되는, 우아한 태도와 말씨를 지닌 고운 어르신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누구라 할 것 없이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때에 이르렀고,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오로지 스스로 겪어내고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의 식사 초대와 동료들과의 만남이 즐거워 중간중간 웃음꽃이 피어나며 귀가 어두운 어르신 덕분에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의 큰소리로 대화가 이어졌다.

“요즘 누가 이렇게 집밥 차려서 초대를 하나, 다들 밖에서 한 그릇 뚝딱 사주고 끝나지. 고마워요! … 솔직히 우리 노인들 불러주는 데가 어디 있어. 노인들 다 싫어해. 상대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지.” “몸이 좋지 않아 새벽기도로 못 나가다 보니 신앙생활도 젊어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몸 튼튼하고 힘 있을 때 교회 일도 좀 더 많이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생겨.” “참 오래도 살았지. 앞으로가 걱정이지 뭐. 아프지 않고 자다가 가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복을 내려주시려나 몰라….”

연로하신 분들이라 식사 자리가 금세 끝날 줄 알았는데 모처럼 즐거워하신 덕에 밤 깊도록 이야기가 이어졌다. 뒷정리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젊어서 어떤 삶을 살았든, 나이 들어 겪어야 하는 공통의 어려움과 인생 말년에 맞닥뜨리게 되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깊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은 마침 출산 후 육아휴직 중인 후배네 집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니 36세 동갑내기 부부가 결혼 4년 만에 시험관 시술을 거쳐 낳은 이란성 쌍둥이 아들이 그림처럼 나란히 누워있었다. 난임 클리닉을 다니느라 고생일 때나, 또 어렵게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맛있는 밥 한번 사주지 못했다. 출산 소식을 듣고도 달려가 보지 못한 미안함을 한순간에 날려 보내는 아기들의 미소에 조카 나이 또래의 후배와 나는 엄마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온종일 아기 둘을 가운데 두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토닥토닥 재워가며 밀린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태명이 ‘감자’와 ‘양파’인 쌍둥이가 엄마 젖을 먹으며 번갈아, 혹은 동시에 울고 웃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이 땅의 어르신들은 차례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85일 된 아기는 앞으로 자신 앞에 놓인 70년 80년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을 상상할 수 없을 테고 그저 오늘 하루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 내겠지. 물론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 기대어 우리는 앞으로의 삶을 꿈꾸고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지만, 결국 인생 말년의 과제는 아기처럼 주어진 순간순간을 성실히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것 같아지는 마지막 때에 이르러 우리가 바랄 것은 오직 한 가지. 주어진 삶을 수굿하게 받아들이며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끝까지 정성껏 살아내는 것! 그러니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나 갓 태어난 아기나 모두 내 삶의 스승임이 분명하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다. 해는 여전히 뜨고, 또 여전히 져서, 제자리로 돌아가며, 거기에서 다시 떠오른다.”(전도서 1:4~5·새번역)


유경(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