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백 칼럼] 외교적 상상보다는 정밀한 분석을

국민일보

[김용백 칼럼] 외교적 상상보다는 정밀한 분석을

입력 2019-07-17 04:01

6·30 판문점 만남은 미국이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한 결과물
복잡한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상상력보다는 팩트 분석에 따른 정교한 외교적 노력 필요해


서부 지중해 해상무역을 둘러싸고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가 벌인 제2차 로마-카르타고 전쟁(기원전 218~202)은 오늘에도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카르타고가 지배하는 히스파니아(이베리아) 주둔군 총사령관 한니발의 로마 대장정은 2000여㎞나 된다. 신카르타고(스페인 남부 카르타헤나)에서 출발해 피레네산맥과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에 이른다. 코끼리 떼와 대군을 이끌고 육로를 개척해 로마로 진군한다는 건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니발은 ‘풍부한 상상력에 따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술전략을 구사한 게 아니었다. 정확한 정세 분석과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의 장단점들을 십분 활용한 결단이었다. 불확실한 전망에도 자신감에 따라 새로운 공략 루트를 감행한 것이다.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연전연승했으나 장기간 전투로 이탈리아반도에 되레 갇힌 신세가 돼 결국 전쟁에서 졌다. 한니발의 전술에 익숙해진 로마의 지연 전술, 카르타고 본토의 정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을 보면 사뭇 실감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극적으로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인 접근 방식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트럼프를 치켜세웠다. 판문점 이벤트는 여러 의미를 지닌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사전 많은 공을 들여 만들어낸 것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는 와중에도 트럼프로선 북한 비핵화 관련한 중국 역할의 제한이나 북·중·러 결속 완화가 필요했다. 아울러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모멘텀을 만들기를 원했다. 김정은과 트럼프 간 친서를 통한 물밑 의견 타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 등과의 의견 교환, 방한하는 지난달 29일 트윗으로 재확인 등이 긴박하게 이어졌다. 한국과 북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사전 조율도 전해졌다. 트럼프는 상상력보다 패권국가의 이점을 적극 활용했다. 모든 조건을 외교적으로 조율하며 전망이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감을 갖고 결단한 것이었다.

판문점 만남이 있은 지 보름이 지나는 동안 미국에서의 반응들이 상대적으로 분출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9일 판문점 만남에 대해 “정상회담(summit)도, 협상(negotiation)도 아닌 두 지도자의 만남(meeting)”이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의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와는 온도차가 상당하다. 뉴욕타임스(NYT)에 의해 제기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동결론’도 가닥이 잡혔다. 국무부의 공식 입장은 “북핵 동결은 이 과정의 해결책이나 최종 목표가 아닌 시작이며 미국 정부는 여전히 북한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제거를 원한다”였다. 그렇다고 빅딜이 아닌 스몰딜 차원에서의 북핵 동결론에 대한 의구심과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security assurances)을 언급해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6·30 판문점 만남은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식에 미국이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접근해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한국에 예상 밖의 돌발 변수가 많아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당초의 북한 비핵화 목표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예의주시하며 ‘한국 패싱(passing)’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게 긴밀히 대응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어려운 역사적 과제 해결을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꼭 그럴까.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팩트풀니스(Factfulness)’의 공동 저자 안나 로슬링 륀룬드의 말은 좀 다르다. 지난 주 방한한 륀룬드는 “벌어지고 있는 큰일들을 제대로 보려면 ‘팩트’에 기반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기업이나 국가 리더가 본능이나 이념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할 때 보다 좋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도 말했다. 감성적인 외교적 수사보다는 냉철하고도 정밀한 정세 및 정보 분석, 정교한 외교적 노력과 자신감 등이 협상의 진전도와 신뢰도를 높일 것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시간 싸움’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내년 11월 대선을, 한국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북한은 선거를 앞두고 성과에 목말라하는 미국과 한국에 ‘시간 끌기’라는 양날의 칼을 유감없이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걸 주는 데 시간 끌기로 최대한 유리한 조건들을 만들려는 노력을 주저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협상 과정에 남·북·미 간 신뢰의 시간을 구축하는 게 매우 중요해졌다.

논설위원 yb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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