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월 입법고시 문항 논란… 사설 모의고사와 ‘판박이’

국민일보

[단독] 5월 입법고시 문항 논란… 사설 모의고사와 ‘판박이’

한 출제위원이 4월 대학강의 때 낸 모의고사 문제와 서술내용·배점 같아

입력 2019-07-22 04:02

지난 5월 치러진 제35회 입법고시 2차 시험 문항이 불과 한 달 전 서울 사립대 A교수가 다른 대학 강의 때 낸 모의고사 문제와 사실상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당시 모의고사 문제를 냈던 A교수는 입법고시 출제위원으로 선정돼 2차 시험 출제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입법고시는 국회 5급 사무관을 채용하는 시험으로 올해 16명을 뽑는 데 3496명이 지원해 21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국가공무원 선발시험의 주요 문제가 일부 대학에서 진행됐던 모의고사 문제와 취지, 사례 구성이 사실상 판박이로 출제되면서 공정성 시비가 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채용 시스템에 공개된 입법고시 2차 시험 행정법 과목을 보면 총 3문제가 출제됐다. 이 중 50점으로 배점이 가장 높은 제1문은 강제 경매절차 이후 벌어질 수 있는 법적 쟁송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난 4월 A교수가 서울 지역의 한 대학 행정대학원 강의 때 낸 모의고사 문제와 서술 내용과 배점까지 모두 같았다.

행정법은 올해 딱 1명을 뽑는 사서직을 제외한 모든 직렬군에서 봐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행정법 과목은 총점이 100점으로, 배점이 50점인 제1문은 실제로 수험생의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주요 문제다.

모의고사에는 ‘갑이 강제 경매절차를 통해 을이 소유·경영하던 건물과 그 건물에 설치된 석유판매시설의 소유권을 획득했다’고 나오는데, 입법고시 2차 시험에는 ‘석유판매시설’이 ‘미용업소’로 업종이 바뀌었고 ‘석유 및 대체연료사업법’이 ‘공중위생관리법’으로만 바뀐 정도다. 을이 불법영업으로 적발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을 때 갑과 을이 관할 시장을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법적 쟁송을 묻는 것도 매우 유사했다. ‘갑이 영업정지 처분에 갈음하는 과징금 처분을 받고자 할 때 어떤 취소 쟁송을 선택해야 할지 검토하라’는 문구는 모의고사와 입법고시 문제가 똑같았다.

지난 5월 치러진 입법고시 2차 시험 행정법 과목의 제1문(왼쪽)과 서울 사립대 A교수가 4월 다른 대학 강의에서 낸 모의고사 제1문. 두 문항은 사례 구성부터 사소한 문장 표현, 문제의 취지까지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밑줄 친 부분은 두 문제가 사실상 똑같다. 두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90% 이상 같다”고 분석했다. 국회채용시스템, 국민일보 입수 자료

국민일보의 의뢰로 두 문항을 대조·분석한 전직 입법고시 출제위원 B씨와 고시학원에서 행정법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강사들은 “같은 문제로 봐도 무방하다” “두 문제는 90% 정도 같다고 보면 된다” “모의고사를 원형으로 해서 고시 문제를 출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입법고시를 주관하는 곳은 국회사무처다. 출제위원으로 선정된 교수진이 문제 틀을 짜고, 별도 선정위원이 이를 검토한 뒤 국회사무처 직원과 외부 위원들이 난도 등을 고려해 최종 확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출제위원과 선정위원은 본인이 위원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문제 유출 시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를 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21일 “2차 시험의 특정 문제가 사설 모의고사와 유사하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이의제기가 접수된 것은 없다”며 “사실관계를 파악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입법고시 2차 시험 합격자 발표는 지난 19일에 있었다. 이달 말 면접 전형을 거쳐 다음 달 5일 최종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 관계자는 “문제 제기되는 사안들을 일일이 확인하기에는 사무처 시스템과 인력에 한계가 있다”며 “합격자 발표 철회 여부 등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A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출제위원으로 결정된 상태에서 강의를 했던 건 아니다. 모의고사를 낸 기억을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출제하지 않았다”며 “두 문제는 다른 문제다. 질문도 다르고 사안도 다르다”고 말했다. A교수는 또 “출제위원 3명이 과거 기출문제와 겹치지 않도록 쟁점들을 정리하고, 남은 쟁점을 어떻게 문제화할지 한정된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한다”며 “출제위원이 문제를 최종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사무처 내부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을 추가로 거친다”고 설명했다. A교수가 낸 행정법 사례 연습은 고시계에서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입법고시와는 별개로 지난 5월 실시된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옛 행정고시) 2차 시험 직후에도 서울 유명 사립대의 4월 모의고사와 유사한 문제가 출제됐다는 의혹이 수험생들 사이에서 제기됐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이 대학의 모의고사에는 ‘서울시장 갑이 지구단위 계획 변경을 결정해 이를 고시하고 강남구청장 을에게 통보했는데, 을이 국토이용정보체계에 등재하지 않고 보류할 경우 갑이 을로 하여금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이 문항이 한 달 뒤 있은 5급 공채 2차 시험 행정법 과목 제3문에 서울시장이 ‘A광역시장’으로, 강남구청장이 ‘C구청장’으로 변경돼 출제됐다. 모의고사에 등장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이 실제 시험에서는 ‘행정적 통제수단’으로 표현만 달라졌다.

5급 공채 시험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사혁신처는 “모의고사를 진행한 교수와 출제위원 명단을 확인한 결과 일치하지 않았다”며 “최근 화제가 됐던 판례이기 때문에 활용 예는 겹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직 출제위원 B씨는 “모의고사를 들었던 수험생이라면 문제에 등장하는 사실관계가 똑같기 때문에 쉽게 풀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설 모의고사 문항과 유사한 문제가 출제되지 않도록 당국이 더욱 철저히 거르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토 과정에서 걸러졌어야 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공정성이 담보돼야 할 국가고시에서 문제 유출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수험생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3년째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한 수험생은 “신림동 고시촌 분위기가 흉흉하다”며 “알음알음 공유되는 유명 대학의 족집게 강의를 못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험을 준비하라는 거냐”고 말했다. 학원에서 행정법을 강의하는 강사 C씨는 “유명 대학의 고시 준비반은 특강 내용이나 모의고사 문제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단단히 입단속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효석 방극렬 이동환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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