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고 찍는 ‘카드 헌금’… 감사를 결제합니다

국민일보

긁고 찍는 ‘카드 헌금’… 감사를 결제합니다

‘현금 없는 헌금’ 시대 이미 시작

입력 2019-07-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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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에도 신용카드 결제 등 현금 없는 헌금을 시도하는 교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두고 달라진 시대에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의견과 헌금을 가볍게 여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저희는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매장입니다.’

일부 카페에 붙어있는 이 문구를 어쩌면 교회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하면서 현금 없이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핀테크 시대가 됐고 교회도 이에 맞춰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핀테크란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인터넷·모바일 공간에서 결제·송금·이체, 크라우드 펀딩, 디지털 화폐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을 말한다.

서울 광진구의 한 교회 예배당 앞에 놓인 카드 결제 단말기 모습.

어색하지만 좋다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김미정(가명)씨는 서울 광진구 A교회를 찾았다. 이 교회 신자인 김씨는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 놓인 책상 앞으로 다가가 목에 걸린 카드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휴대용 신용카드 단말기 3대 중 한 대에 자신의 카드를 꽂았다.

사용이 익숙지 않은 듯 김씨는 한동안 단말기를 만지작거렸다. 카드가 읽히고 버튼을 눌러 금액을 찍고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단말기에서 두 장의 영수증이 나오자 김씨는 “됐다” 하는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어 영수증 중 한 장은 가방에 챙겨 넣었고, 카드사 회수용 영수증엔 자신의 이름 ‘김미정’을 적어 예배당 입구 나무함에 넣었다. ‘헌금함’이었다.

서울 강남구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이수경(가명)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화면과 주보를 번갈아 봤다. 스마트폰 속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주보에 적힌 계좌번호를 누르고 ‘OTP’ 카드의 번호까지 입력했다. 잠시 후 계좌이체 완료 화면이 떴다. 십일조였다.

최근 한국교회에서 헌금을 신용카드나 모바일뱅킹으로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처음엔 거부감을 드러내던 신자들도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김씨는 “처음엔 신용카드 결제 기계가 비치됐을 때는 ‘뭐지’ 싶었다”며 “그런데 현금을 쓰지 않아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다 보니 주일이면 헌금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있었다. 카드 결제 시스템을 적용한 뒤 이런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영국의 성공회 신부가 카드 단말기를 들고 있다. 게티이미지

사라지는 ‘헌금 주머니’

올 초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과부가 성전 헌금으로 내놓은 동전 두 닢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소위 ‘삥땅’ 헌금 사건 등을 나열하며 헌금의 역사를 소개했다.

이어 텔레그래프는 구약의 헌물이 신약에 와서 헌금으로 바뀐 것처럼 지금은 또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예배 시간 교회 안에 돌려지던 헌금 주머니나 접시·헌금함과 다양한 종류의 헌금봉투에서 최근엔 ‘현금 없는 헌금’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금 없는 헌금을 가장 먼저 실현한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현금 없는 사회를 표방한 스웨덴이다.

2015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카드결제 기계(Kollektomat) 앞에서 십일조 등 헌금을 내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필라델피아교회를 소개했다. 신자들은 카드결제 기계뿐만 아니라 모바일 지불 시스템(Swish) 앱으로 십일조를 내기도 한다. 이 교회는 카드결제와 모바일뱅킹 방식을 도입한 뒤 현금으로 십일조를 내는 비율이 15%로 줄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도 최근 온·오프라인 겸용 시스템인 카드 단말지급기인 ‘탭앤고(tap-and-go)’를 전국 1만6000개 교회에 선보였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성공회는 이 시스템을 결혼식 비용, 예배 후 커피값을 지불하는 데 적용한 뒤 주일예배 중 헌금에도 사용하기로 했다.

거부감 해소는 과제

신용카드 결제 등으로 헌금드리는 방식을 두고 의견은 엇갈린다. 일단 새로운 기술에 익숙지 않은 고령의 신자들은 소외될 수 있고 사이버 보안 위협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헌금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교회 목사는 “헌금을 낼 때 신자들은 경건한 마음을 담는다”면서 “신용카드는 일종의 ‘빚’이라는 점에서 헌금과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앞서 소개한 한국의 교회들도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교회 이름을 밝히지 말아 줄 것을 요청했다.

반면 교회도 달라진 세상을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과 교회’를 주제로 논문을 쓴 임우성 서울 압구정예수교회 목사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도 다변화되고 있다”며 “교회가 이를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임 목사는 또 “(헌금에 대한) 진리는 변해선 안 된다”면서도 “스마트폰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젊은 성도들에겐 오히려 모바일뱅킹이나 신용카드 결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액수가 드러나는 현금에 비해 카드나 모바일뱅킹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 성공회의 존 프레스턴 목사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층은 더 이상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 만큼 카드결제 시스템은 모든 연령층이 자유롭게 봉헌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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