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순결의 영성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순결의 영성

입력 2019-07-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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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부재의 하나님.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들어온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목회자이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행여 엄마아빠의 눈은 속여도 하나님을 속일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니 매사에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행동해라.” 그다지 일탈적인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내가 무엇을 하든 제일 먼저 떠오르는 윤리 강령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늘 모범 행동만 하는 아이로 자랐고, “역시 목회자 자녀는 다르다”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목회자의 자녀이기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하며 살았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지 않으신 곳이 없으시다는데, 그러니까 딱 붙어서 내 곁에 계시다는데, 어떻게 대충하고 슬쩍하고 그릇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라면서 나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신앙인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그들은 과연 신앙인일까?

어느새 율법주의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신학을 공부하며 ‘임마누엘’이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주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해석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럴 일이다. “꼼짝 마라, 경찰이다!” 이런 소리를 들었을 때 “아, 살았다” 하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뜨끔하며 겁먹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평소에 범법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경찰이 두려울 일이 없고, 더구나 내가 피해자가 된 상황이라면 경찰의 존재가 반가울 일이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그 말씀에 ‘아멘’ ‘할렐루야’ 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순결’한 자이다.

하지만 나는 유대교적 의미에서의 율법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순결의 정의는 특정한 사회제도의 규범 안에 갇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몸과 맘과 혼을 가진 한 인격체의 전적인 삶의 태도가 정화되어 나가는 과정을 나는 ‘순결’이라고 부르고 싶다. 욥기 23장 10절에서 고백 된 ‘정금과 같이 되는 과정’ 말이다. 이런 묵상은 최근 수년간 순결을 ‘잃었다’ ‘빼앗겼다’고 괴로워하는 신실한 기독 여성 청년들을 마주하다가 시작되었다. 내가 상담한 젊은 여신도들의 첫 성경험 상대가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는 게 안타깝고 속상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은 ‘더럽혀진’ 존재로서 더이상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순결한 여인이 아니라며 자기혐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케미’(서로 성적으로 끌리는 화학적 작용)가 통하고 상호합의에 이르렀다면 어떤 사이든 성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쿨’한 신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성경 안에서 찾아야 할 본질적인 관계적 혁명을 놓친 채 교회가 전근대(pre-modern)적 문화를 반영하여 여성의 성을 마치 물건처럼 대하며 만들어진 윤리규범을 적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여성의 순결함은(물론 남성의 순결함도) 특정 행동 한 번에 빼앗기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순결함을 성경험과 배타적으로 연결시켜 규정했던 윤리규범은 기독교 경전에만 명시된 것이 아니다. 모든 전근대 가부장제 사회의 윤리규범이 한결같았다. 오히려 예수께서 보이신 관계적 혁명의 고유성은 시대적 응시를 뛰어넘어 여자를 인격체로 바라볼 것을 명시하셨던 지점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여자를 바라보는 응시 자체를 바꾸라고(마 5:28) 준엄하게 명하셨다.

그럼 남자는? 왜 하필 예수께서는 콕 집어 여자라 하셨을까? 당시 성적 응시의 ‘주체’는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적 대상이요 재생산 도구로 여겨지던 당대의 문화와 제도를 뛰어넘어 예수께서는 관계적 혁명을 요청하셨던 거다. 그러니 남자든, 여자든 순결할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늘 동행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사람을 거룩한 인격체로 바라보고 행동할 것이다. 무엇보다 순결은 일회적으로, 강압적으로 누군가에게 빼앗기거나 잃어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내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 안에서 생의 전인격적 헌신으로 만들어가는 영성의 과정임을 기억할 것이다.

백소영(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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