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전슬기] 노인의 유모차와 ‘먹고살 길’

국민일보

[가리사니-전슬기] 노인의 유모차와 ‘먹고살 길’

그들을 ‘천덕꾸러기’로 여기지 말고 재교육할 방법 마련해야 우리 사회의 새 희망 될 수 있어

입력 2019-07-29 04:06

지난해 여름휴가를 부모님과 보냈다. 특별한 일정 없이 부모님을 모시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 짧은 며칠 동안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는 새로운 커피숍을 갈 때마다 주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온갖 영어로 뒤덮인 메뉴를 보면서 엄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했지만 이번에는 각종 포인트 적립, 할인 행사 등을 빠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뒤에 주문을 기다리는 인파의 ‘눈치’에 결국 최종 주문은 내 몫이 됐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싶고, 홈쇼핑에서 파는 가방을 사고 싶은 엄마는 휴가 내내 예매·주문을 시도했다. 엄마는 관련 앱을 찾는 데 한나절이 걸렸고 예매·주문, 신용카드 결제 단계까지 넘어가지 못했다. 엄마는 하루종일 상담원과 통화를 하다가 끝내 또 나를 찾았다.

엄마만 그랬을까. 아빠의 하루는 더 힘들었다. 70대를 바라보는 아빠는 당뇨를 앓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귀가 잘 안 들리고, 행동이 느려지고 있다. 나는 병원을 가기 위해 아빠 차를 타고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이패스 장착과 사용법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빠는 직접 결제가 가능한 출구 찾기를 어려워했다. 아빠는 계속 톨게이트 앞에서 차로를 바꾸려다 ‘빵’ ‘빵’ 거리는 차들의 경적에 식은땀을 흘렸다.

작년 이러한 상황을 겪으며 떠올린 단어는 ‘진상’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각종 가게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서 어느새 ‘진상 손님’이 돼있었다. 사회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지만 반대로 엄마와 아빠의 행동은 빠르게 느려지고 있었다. 노인들의 행동은 우리 일상을 지체시키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진상 손님’이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된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13.8%였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50년 뒤인 2067년 절반(46.5%)까지 올라간다. 2065년에는 고령층 비중이 청년층 비중을 추월한다. 한국은 총 인구 대비 14% 이상이라는 ‘고령사회’ 기준을 충족한 상태다. 노인들이 조만간 우리 사회의 핵심층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 사회의 핵심층이 달라지면 파생되는 일들이 많다. 경제 주체가 달라지면 노동력, 소비 등이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 일을 할 수 있는 청년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인이 많아진다. 소비도 불안해진다. 소비를 할 여력이 없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물건을 팔 ‘시장’이 축소된다. 민간기업의 투자 요인이 줄면서 경제 성장을 위축시킨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청년 한 명이 노인 여러 명을 먹여 살리면 된다. 이미 지금 추세로 가면 2067년엔 청년 1명당 부양해야 할 노인은 약 1.2명이 된다. 다른 방법은 노인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이 최대한 오랜 시간 경제 활동을 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소비와 투자 등에 기여를 하면 된다.

전자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그렇지만 후자도 쉽지 않다. 기술 발전으로 젊은층의 일자리도 사라지는 상황에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의 대부분이 저임금, 단기·단순 일자리인 이유다. 최근 택시를 타면 대기업 임원, 사업가 등 고학력에 좋은 직업을 가졌던 기사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또한 수명은 늘어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노인 노동력’이 택시업계로 많이 흘러가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은 없을까. 분위기를 바꿔봤으면 좋겠다. 일단 이들을 ‘천덕꾸러기’로 분류하지 말고, 재교육할 방법을 고민해 보자는 얘기다. 노인들의 사회적 퇴화는 당연히 불편하다. 그러나 사회가 조금만 인내심을 가진다면 이들은 ‘부양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주축’이 될 수도 있다. 길을 걷다 보면 허리가 아파 ‘유모차’를 지팡이로 이용하는 노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어린 시절 유모차를 탔을 때는 사회의 새로운 희망이었을 것이다. 60대에 다시 사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는 건 절대 불가능한 걸까. 지난 1년간 일을 구하러 집을 나선 고령층(55~79세)의 비중은 올해 5월 18.8%로 역대 최고치였다. 자식에게 기댈 수 없고, 노후 자금도 없는 노인들도 간절하게 ‘먹고살 길’을 찾고 있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