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의 화학물 관리 강화안, 일 기업은 “너무 강하다”며 민원

국민일보

[단독] 한국의 화학물 관리 강화안, 일 기업은 “너무 강하다”며 민원

일 정부는 ‘관리 허술’ 지적하며 수출 규제 했는데…

입력 2019-07-30 04:00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강화하려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고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이 화학물질을 허술하게 관리했다며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일본 정부와 상반된 입장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근거 자체가 ‘억지’임이 들통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가 29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8년 서울재팬클럽의 사업환경 개선을 위한 건의사항’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지난해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실효성이 낮은 제도(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건강, 환경에 대한 영향이 큰 것부터 규제 대상을 좁혀야 한다. 기업에 부담이 작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통해서도 유해성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니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제도 도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도입을 반대한 것이다.

서울재팬클럽은 주한 일본 기업인들의 모임이다. 한·일 경제관계 발전을 위해 1997년 설립됐다. 일본 기업 400개사가 법인회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기업인 등 개인회원도 1650명에 달한다. 현재 모리야마 도모유키 한국미쓰이물산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의 투자·경영·수출 관련 건의사항을 정리해 매년 한국 정부(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하고 회신도 받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모리야마 이사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외국인 투자기업 초청 간담회에 일본 기업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서울재팬클럽이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제도 도입을 반대한 배경에는 ‘일본 기업의 부담 증가’가 있다. 서울재팬클럽은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제도가 도입되면 대응 시간, 비용, 당국·기업의 부담 증가가 예상된다”고 명시했다. “일부 화학물질 제품에는 포장이나 용기의 크기에 따라 화학물질확인번호를 물리적으로 표시할 수 없어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소량 용기의 경우 화학물질 정보를 표시하더라도 식별이 어려워 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도 덧붙였다.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제도는 국내에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고유식별번호(화학물질확인번호)를 부여하고, 혼합·보관·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이를 표시·관리하는 제도다. 기존 화학물질관리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환경부가 지난해 5월 입법 예고했고, 올해 4월 국회에 개정안을 올렸다.

환경부 관계자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측면에서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화학물질 유통경로의 투명성과 거래의 공정성을 높이고, 유해정보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제품명을 바꿔 추적이 안 되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학물질을 본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개량해 사용하더라도 추적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체계가 허술하다며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 일본 정부의 주장이 맞다면 한국 정부가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강화하려고 제도를 개선하는 움직임에 대해 일본 기업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관리체계를 강화하라며 자국 기업들의 경영상 애로사항을 오히려 심화시키려 나선 셈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상충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수출 규제 근거 자체가 억지라는 근거”라고 꼬집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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