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장은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국민일보

[너섬情談-장은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또 다른 한계에 다가가기를 실천할 때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된다

입력 2019-07-31 04:02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해 봐.”

지하철에서 연인이 속삭이는 중이다. 순간, 침묵이 감돈다. 짓궂은 미소가 상대방 얼굴에 떠오른다. 기습을 당한 듯 말을 이리저리 더듬는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무적의 질문이다. 한 번 더 연인이 묻는다. 상대는 어떻게든 혀를 놀리고 입술을 열려 하지만, 언어가 좀처럼 입을 떠나지 못한다.

사랑만이 아니다. 우정도, 기쁨도, 열정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말로 옮기기 힘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가장 기쁜 기쁨이고, 이야기로 옮기지 못할 사랑이 가장 깊은 사랑이다. 언어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표현하기에 아주 불완전한 도구다. 일찍이 노자는 이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라고 말했다.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 붙일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도덕경’ 첫머리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궁금했다. 노자는 도덕경을 왜 썼을까. 어릴 때에는 이를 절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언어로 도무지 이를 수 없는 진리가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세계는 무궁하고 신비하며, 인간은 유한하고 왜소하다. 그러니 인위를 세우지 말고 무위의 흐름을 따르라.

인간의 삶에서 정녕 중요한 것은 대답의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100년 전, 지적 탐구의 한계에 절망해서 전장의 아수라장 속으로 뛰어들었던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모든 가능한 과학적 물음들이 대답된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문제들은 여전히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우리는 느낀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무 물음도 남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대답이다.”

과학은 합리를 말할 뿐 의미를 건드리지 않는다. ‘사랑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과학의 질문이 아니다. ‘뇌에, 신체에, 행동에 어떤 변화가 있을 때 이를 사랑이라고 명명하는가’ ‘사랑이라는 것을 하면 수명이 늘어나는가’ 등이 과학의 질문에 가깝다.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관찰할 수 있는 현상으로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슨 답을 얻더라도 사랑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사랑의 탐구에서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합리가 아니라 의미다. 과학으로 사랑의 답을 구하려 한다면, 인간은 거꾸로 무의미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인생의 의미는 절대로 언어화할 수 없다. 미국의 철학자 휴 드레이퍼스는 “인생에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없는 무능력”을 “좌절”이라 했는데, 이것이 과학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가장 큰 질병이다. 인간은 의미 때문에 죽을 수 있어도 무의미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되는데, 현대인은 삶의 공허 때문에 흔히 극단적 선택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노자의 말에서 절망이 아니라 위대한 추구를 떠올리게 되었다. 좌절하지 말 것. 말로 온전히 전할 수 없다고 해서 도가 부재하지는 않는다. 표현을 이룩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도가 항상 언어 바깥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인생은 오히려 무한한 도전이 된다. 개념을 창조하고 비유를 조직하며 상징을 고안하고 알레고리를 동원해서 한 번 더, 충만한 기분을 느낄 때까지 이런저런 언어게임을 죽을 때까지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지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연인이 나란히 붙어 앉아서 사랑을 표현해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최고의 사랑놀이다. 불가능의 가능을 추구하고 이를 어떻게든 실현해 보려는 것, 이것은 사랑이 절정에 올랐다는 뜻이다. 입이 안 떨어진다고 슬쩍 얼버무리거나 성질을 부리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고수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말을 골라서 연인의 심장에 도전한다.

이처럼 고백의 언어를 가다듬고, 사랑의 마음을 전할 이벤트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표현은 더 정치해지고, 인식은 더 깊어지며,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연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또 다른 한계에 다가가기, 정신의 한 높이에 도달해서 더 높은 곳을 올려다보기, 이런 실천들이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고귀해진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사랑의 언어들은 모두 이로부터 나왔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