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김준동] 청량리의 추억

국민일보

[샛강에서-김준동] 청량리의 추억

강북의 허름한 동네에 불과했던 청량리… 강남북 균형 개발로 조화로운 도시 만들어야

입력 2019-08-01 04:01

“오징어, 땅콩 있어요.” “삶은 계란, 김밥 있어요.” 철로의 이음매를 지날 때마다 ‘털커덩 털커덩’ 굉음이 객실 안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레일 바퀴가 빨라지는 만큼 기차는 속력을 더한다. 플랫폼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지 한참, 제복을 입은 홍익회 소속 남성의 거친 외침이 들려온다. 손안에 각종 주전부리를 그리 잔뜩 품을 수 있는지 참 신기하다. 망에 넣어 팔았던 삶은 계란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사연을 담은 얘기들이 넘쳐날 즈음 열차는 터널로 기어들어 간다. 차창에 비친 자화상을 바라보며 저마다 회상에 잠긴다. 그것도 잠시. 치렁치렁 내려앉은 칡넝쿨이 열차 창문을 두드리면서 상상의 날개가 접힌다. 지금은 추억 저 너머로 사라진 비둘기호 완행열차의 풍경이다.

당시 완행열차는 낭만과 추억, 그리움을 싣고 달렸다. 사랑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고 희망도 있었다. 50년 전 부모님은 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삶의 애환이 배어 있는 고향 땅을 떠나 서울로 향한 것이다. 우리 어린 형제들을 안고 말이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을 만도 한데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자식들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에 상경길이 그리 뿌듯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큰형은 서울로 가면 코를 베어 간다는 말에 코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고 한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8시간여를 달린 중앙선 완행열차의 최종 종착지는 청량리역. 1960~70년대 ‘서울로, 서울로’ 올라온 장삼이사(張三李四) 삶의 터전은 주로 열차의 마지막 종착역 부근이었다. 부모님도 그러했다. 우리 가족이 청량리역 부근에서 혹은 웃고, 혹은 울면서 보낸 세월은 10여년에 달했다.

청량리 이름은 청량사(淸凉寺)에서 유래했다. 광복 직후인 46년 청량리동으로 바뀌었는데 청량리1동에는 청량리 로터리 부근으로 청량리세무서, 청량리정신병원 등이 있었고 청량리2동에는 임업연구원, 세종대왕기념관, 영휘원 등이 있었다. 지난해 폐쇄된 청량리정신병원은 국내 1호 정신병원으로 화가 이중섭, 시인 천상병 등이 입원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청량리역은 젊은이들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경기도 가평이나 대성리, 강원도 춘천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떠나야 했기에 아침부터 등산가방과 통기타를 맨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역 광장에 있는 시계탑 주변에는 기차시간까지 통기타로 ‘고래사냥’ 노래를 외치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청량리는 7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부도심이었지만 인근에 있는 윤락가와 건물 노후화 등으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청량리588’이라 불리던 집창촌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젊은 층과 여성 인구의 유입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청량리역 주변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다. 강북의 허름한 동네에 불과했던 곳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포함해 지하철 5개 노선과 KTX강릉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집창촌 흔적이 곳곳에 남았지만 현재는 모두 헐리고 대형건설사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집창촌 거리와 인근 낡은 건물도 거의 헐렸다. 청량리역 일대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면서 강북을 넘어 서울의 대표 주거지로 변신할 기세다.

60년대까지 서울은 사실상 강북뿐이었다. ‘마을 리(里)’가 붙는 지명은 청량리, 미아리, 수유리 등 강북에만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다. 지금의 강남 일대를 일컫던 ‘영동(永東)’도 영등포의 동쪽이란 뜻이었다. 당시 강남은 강북 의존적인 베드타운 성격을 띠었다. 70년부터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강북은 점차 자리를 잃어갔다. 인구 변화를 보면 뚜렷하다. 서울 인구는 70년 550만명에서 99년 1030만명으로 거의 두 배 늘었다. 강북 인구가 430만명에서 520만명으로 증가한 데 비해 강남 인구는 120만명에서 510만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시기 늘어난 인구 가운데 81%가 강남에서 증가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강남북의 격차는 벌어졌고 지역 간 위화감도 심화됐다. ‘두 개의 도시’가 돼 버릴 정도로 두 지역의 불균형은 심각하다. “조화로운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환경적 조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조화로운 도시 개발을 위한 도시 계획이 이어져야 한다.” 유엔 산하 기구인 해비타트(Habitat)가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제시한 해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량리의 변신은 무척 반갑다. 아련한 추억은 사라지고 있지만.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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