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예술이라는 선물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예술이라는 선물

입력 2019-08-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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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클래식 공연장에 들어섰다.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남자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별거한 부인과 아들에게 줄 생활비가 절실히 필요해 간병인 자리를 얻었을 뿐이고, 그렇게 병간호하는 전신 마비 장애인의 공연 관람을 돕기 위해 왔던 상황이다. 공연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등 공연장 에티켓에 어긋나는 행동을 여러 번 한다. 과연 끝까지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될 정도다. 그런데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이 남자의 자세가 점점 단정해지더니 소프라노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르자 눈빛마저 경건해진다. 곡이 끝나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렬히 손뼉을 친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난생처음 붓을 잡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세상엔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노래 한 편이 가르쳐준 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업사이드’에 나오는 장면이다.

예술은 그렇게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 요지부동이었던 사람의 존재를 흔들어 놓는다. 흥겨운 노래 한 자락이라 여기며 무심코 듣던 음악에서, 이름도 모르는 어느 작가의 책 한 페이지를 읽다가, 수많은 인파 속에 기대감 없이 바라보던 그림 속 한 인물이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의 문 하나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중학생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빌려준 카세트테이프를 집으로 가져와 플레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다. 기타 선율이 마음을 휘감아 버린 것이다. 오로지 숫자에만 몰두해 있을 때였다. 교실 복도에 시험이 끝날 때마다 붙여놓았던 전교석차에 내 이름이 얼마나 앞으로 나갔는가만이 중요할 때였다. 이번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시험 걱정이 시작됐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공부를 한 게 아니었다. 오로지 숫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중학교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러던 내게 음악은 전혀 다른 우주가 세상에 존재함을 알리는 서곡과도 같은 초대였다. 나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그 플레이 버튼을 누를 것이다. 그때가 없었다면, 나는 목사로서 영화관에서 사역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은 효율과 성과로 측정 가능한 세상과는 또 다른 평가 기준이 세상에 존재함을 일러준다. 위대함이나 훌륭함이 건물의 높이나 직위의 영향력으로 가늠하는 것이 아닌,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탄성 그 자체일 수 있음을 경험케 한다. 예술이 아니었다면 일생에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적 체험이 필요한 까닭은 갈수록 사회가 양극화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한 폭력성이 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토론으로 가면 서로의 처지에서만 상대방을 비방하지만,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선 날 선 긴장을 내려놓고 함께 상황에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눈물이 보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다고 지는 게 아니다.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거다. 예술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은 오용하면 인간의 자만과 쾌락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선용한다면 풍성한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오늘도 이 땅의 수많은 예술가가 창조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을 전해주고 있다. 예술 안에 담긴 무수한 영적인 보고(寶庫)를 일단 둘러보고 만나보자. 눈을 돌려보면 의외로 삶의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좋은 예술을 만날 수 있다.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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