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다윗의 숨결이… 성서시대 역사를 캔다

국민일보

여기, 다윗의 숨결이… 성서시대 역사를 캔다

성경의 땅, 이스라엘은 발굴 중

입력 2019-08-0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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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 시절 피난처였던 시글락 유적지가 발견된 이스라엘 중서부 도시 기럇 갓 인근 작은 언덕 ‘키르벳 에르라이’ 모습. KRMNews 제공

#1. 구약성경 사무엘서와 여호수아에 언급된 시글락(Ziklag) 유적이 최근 이스라엘 성서고고학 현장에서 발견됐다. 시글락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피신했을 때 가드왕 아기스에게 얻은 도시로, 다윗과 그를 돕는 무리가 머물러 있었다. 2일 외신 등에 따르면 요셉 가르핀켈 히브리대 교수와 호주 시드니 맥쿼리대 카일 박사 팀, 이스라엘 고고학청(IAA)은 2015년 이스라엘 중서부 기럇 갓 인근 작은 언덕인 ‘키르벳 에르라이’에서 첫 발굴을 시작했으며 최근 이곳이 시글락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 발굴단원이 시글락에서 출토된 토기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2. 지난달 22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인근 모차(Motza) 지역 발굴지에서 9000년 전 정착지가 드러났다.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이 유적지는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영국의 스톤헨지 거석 유적보다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유적은 건설업체들이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직전 타당성 조사를 하던 중 발견됐다. 모차는 구약성경 여호수아 18장 26절에 등장하는 ‘모사’의 현대식 이름이다. 베냐민 지파의 14개 성읍들 중 한 곳으로 성경엔 딱 한 번 등장한다.

9000년 전 유적이 발견된 예루살렘 인근 모차 지역 전경. 유튜브 캡처

이스라엘은 거대한 고고학 발굴 현장

이스라엘은 성경의 땅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살았던 곳이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한 뒤 사사시대를 거쳐 통일왕국 시대, 분열왕국 시대를 살았던 곳이다. 유대인들이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살았던 땅이고 페르시아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와 살았던 곳이다. 유대인들의 문화와 유적이 수천 년간 쌓이고 쌓인 땅이다. 전 세계 성지순례객으로 붐비기도 하지만 고고학 발굴을 위한 곡괭이 소리도 우렁차다.

현재 이스라엘 전역에서 발굴이 진행되는 곳은 대략 250곳이다. 과거 발굴지까지 포함하면 총 2만여곳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국토 면적은 2만770㎦로 경상도와 비슷하다. 이만한 땅 전체가 발굴 현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고고학 발굴은 두 종류로 나뉜다. 구제발굴과 학술발굴로 구제발굴은 공사에 앞서 발굴, 조사하는 것이다. 학술발굴은 대학이나 박물관, 문화재관리국 등에서 연구 목적으로 시행한다.

홍순화 한국성서지리연구원 원장은 “이번에 발견된 모차 유적은 고속도로 다리 공사를 하다 발견된 경우”라며 “고고학적 가치가 있으면 공사는 모두 중단된다”고 말했다.

학술 발굴 작업은 주로 여름방학을 이용해 실시된다. 참여자들이 학자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햇빛이 강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정오까지 진행된다. 고고학 발굴은 고상한 일이 아니다. 땅을 파면 보물이 뚝딱 튀어나오는 ‘인디애나 존스’ 영화도 아니다. 파도 파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파고 파는 과정 자체도 노역이다. 섭씨 40도에 가까운 폭염과 얼굴을 때리는 흙먼지, 지루함과 싸워야 한다.

정오까지 발굴 작업을 마치면 오후엔 세척과 분류, 그룹별 토의 과정을 거친다. 출토된 유물은 온전한 형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깨진 조각들이다. 이들을 모두 수거해 세척한다. 세척은 유물의 원래 색이나 새겨진 무늬, 그림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한다. 올리브 씨앗이나 특이한 토양, 뼈, 불탄 곡식 등이 나오면 주의 깊게 들여다 봐야 한다. 연대와 생활상을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성서고고학의 역사

이스라엘에서 고고학 발굴이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 중간 시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으로 구분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유적지 확인과 함께 성서 지명 확인 작업이 주로 이뤄졌다.

두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에는 고고학 발굴에서 많은 성과가 나타났다. 다국적 발굴팀들에 의한 대규모 발굴이 이 기간에 이루어졌다. 미국인에 의한 벧산 발굴(1921~33)과 므깃도 발굴(1925~39)이 대표적이다. 신학자들에 의한 발굴도 많아져 텔 엔 나스베(1927~35), 벧세메스(1928~33), 실로(1922~32), 텔 엘-켈레이페(1938~40) 발굴이 이어져 성경의 기록을 확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정치적 이유로 요르단과 이스라엘로 나뉘어 발굴이 이뤄졌다. 여리고(1952~58) 예루살렘(1961~67) 세겜(1955~66) 도단(1953~60) 기브온(1956~62) 아이(1964~69) 등이 발굴된 게 이때다. 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엔 유대인들이 직접 발굴에 참여했다. 강후구 서울장신대 교수는 “이스라엘 독립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 지역은 일부를 제외하고, 유대인들이 중심이 돼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글락 발굴 현장에서 작업중인 한국인 발굴단원. AFP연합뉴스

한국인들의 발굴 참여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자원봉사자 중심이었다. 97년부터 시작된 텔 레호브 발굴에선 한국발굴단이 한 구역을 맡아 발굴에 참여했다. 2015년에는 텔라기스한국발굴단이 시글락을 발견한 가르핀켈 교수팀과 공동으로 3000년 전 르호보암 성벽을 발견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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