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윤중식] 재팬 보이콧을 넘자

국민일보

[빛과 소금-윤중식] 재팬 보이콧을 넘자

입력 2019-08-03 04:06

매일 아침 일본 왕이 있는 도쿄를 향해 절을 하고 ‘황국신민의 맹서’를 소리 높이 외치며 자랐다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자신의 책 ‘생각’(생각의 나무)에서 지금도 소년시절을 생각하면 가위눌릴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이 전 장관은 책에서 “일제에서 해방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흑백논리의 덫에 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면서 “사지가 묶여 있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생각이 갇혀 있는 답답함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꼬집었다.

한국인 가운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을 배우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북선과 맞선 일본 배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일본의 ‘아다케 후네(安宅船)’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함 중에서 가장 큰 배였다. 아다케 후네는 무로마치시대 후기에서 에도시대 초기까지 일본에서 널리 사용된 군선으로 몸집이 크고 중후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는 느리지만, 전투 시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전투원이 승선할 수 있었다.

일본의 해군 전술은 왜구들의 전법을 모델로 한 것으로 화공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불에 타버리거나 침몰하면 빼앗아올 물건도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의 전략과 전술에 통달했다. 그래서 기존 판옥선을 급히 거북선으로 개조했다. 이순신 장군과 대적한 일본 장수 구키 요시타카가 이끄는 수군들은 카르타고와 싸웠던 로마군대처럼 해상전투를 육상전투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들판에서 칼싸움에 능한 사무라이들은 물 위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판옥선에 쇠꼬챙이가 박힌 귀갑 모양의 뚜껑을 덮은 거북선을 본 왜병들이 배 위에 오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혼란 끝에 자멸한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전쟁에 상대가 있듯 경제와 외교도 상대적이다. 상대적 원리에 의해 생성되는 관계론인 것이다. ‘가위바위보’처럼 상대방이 무엇을 내느냐에 따라 나의 ‘주먹’이 결정된다. 주먹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가위를 내면 이기고 거꾸로 보자기를 내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까지 거북선만 알고 그와 맞선 일본 배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상대를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참담한 광복의 달 8월이다. 자유무역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일본의 수출 규제 횡포는 시작에 불과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약속이나 한 듯 우리 영공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미증유의 위기상황에서 우린 어떤가. ‘친일파’ ‘매국노’ 등 시대착오적 편 가르기가 난무하고 ‘무조건 반일’에 사활을 건다. 1871년 미국 함대의 강화도 침범 이후 흥선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척화비에 강경한 문구를 새기는 대신 과감하게 선진 문물을 도입하고 국력을 키웠더라면 위안부로, 강제징용자로 끌려가는 비극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은 ‘죽창’ ‘국채보상운동’ ‘위정척사’ ‘재팬 보이콧’ ‘이순신 장군 배 12척’ ‘아베 말이야’ 등의 선전 선동적인 구호로 국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 방일단은 일본 여당인 자민당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면담하려다가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목계(木鷄)는 ‘나무로 만들어진 닭’이라는 말이다. 상대의 온갖 도발에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상태를 뜻한다. 타면자건(唾面自乾)이라는 고사성어도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결국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역사 속에 답이 있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국회를 방문해 이런 연설을 했다. “한·일 양국이 50년도 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문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자. 한국교회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아시아의 협력을 위해서 헌신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용서하고 일본이 진실로 사죄할 때 아시아는 밝은 미래가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 24:5~6)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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