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박원곤] GSOMIA 파기 신중해야

국민일보

[한반도포커스-박원곤] GSOMIA 파기 신중해야

입력 2019-08-05 04:02

황당하다. 국제 여론이 부정적이고 미국의 개입이 회자되면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후 자유무역질서에 적극 편입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던 일본이 정치적 이유로 우방국을 향해 비관세 장벽을 세웠다.

일본의 조치가 위안부 합의 파기와 강제 징용자 배상 판결과 관련한 보복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각의 결정을 “한국의 수출 관리제도에 불충분한 점이 있기 때문이며, 대항 조치가 아니다”고 강변했으나 논리가 빈약하다. 한국은 전략물자 및 무기 수출을 통제하는 국제협의체인 바세나르 협약을 비롯한 4대 협정에 모두 가입하고 있다. 황망함을 뒤로하고 한국은 전략적이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선 시간을 벌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일본은 자유무역질서 아래서 개별국가에 최적화된 산업구조를 기반으로 한 세계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 지적한 것처럼 소재기술과 기초과학에서 일본은 70년 이상 축적된 기술이 있으므로 단기간 내에 한국이 따라잡기 쉽지 않다.

우선 미국의 중재를 통해 일본 조치를 중지 또는 유예시켜야 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이전 행정부와는 달리 트럼프는 국제사회의 규범과 원칙에 관심이 없고 단기 물질적 이해를 우선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정부가 언급하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카드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일반의 이해와는 달리 GSOMIA는 쌍방향 조치다. 일본이 원한다고 모든 정보를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판단해 정보 제공 여부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형태다. 일본은 한국과 33번째로 GSOMIA를 체결한 국가다. 한국은 지난 7월 한국의 영공을 침범해 주권 훼손 행위를 감행한 러시아와도 협정을 맺고 있다.

한·일 협정이 특별한 이유는 미국의 이해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전 이후부터 아시아에서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안보·경제 협력을 촉구했다. 1962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한·일 협정이 “한·일뿐 아니라 미국과 자유세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뒤 50년이 지난 2016년 11월 GSOMIA 체결 과정에서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온적인 한국과 일본을 적극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한·일 안보협력을 원하는 것은 한·미·일 3국 협력으로 발전시켜 북한 위협에 대응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특히 동맹국의 책임과 비용 분담 증대를 거칠게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한·일 협력을 더욱 높이 평가한다.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는 한·일 갈등을 경제적 이해와 1965년 조약 해석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한·일 간 역사문제의 정당성이나 자유무역의 가치 등을 고려치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GSOMIA를 파기한다면 미국은 한국이 경제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장해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해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이 틈을 노려 미국의 귀에 한국의 중국 경사 가능성을 속삭일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움직여 일본의 조치를 유예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이 중시하는 안보협력 파기 카드가 아니라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따른 한·일 갈등으로 인해 중국만 경제·안보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도 완전히 신뢰할 상대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피해를 줄이고 반격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눈높이에 맞춘 접근이 필요하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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