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1980년 동아리로 시작, 장애인 선교 중심축 역할

국민일보

[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1980년 동아리로 시작, 장애인 선교 중심축 역할

<14> 대학 밀알의 발전

입력 2019-08-07 00:05 수정 2019-08-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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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가 1987년 미국 템플대 사회복지대학원 건물 앞에 서 있는 모습. 세계밀알연합 제공
1980년대엔 대학 동아리를 ‘써클’이라 불렀다. 우리는 밀알 운동 확산을 위해 대학마다 밀알 써클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부분의 단원이 대학생들이었고 다니는 학교도 다양해 그들을 발판으로 써클을 조직해 나갈 계획을 세웠다. 맨 처음 만든 곳이 총신대였다.

밀알 최초 대학 동아리인 ‘총신 밀알’을 등록시킨 건 1980년 9월 26일이었다. 정식으로 학교에 써클 등록을 하면 ‘써클 룸(동아리방)’을 제공받는 등 혜택도 있었고 합법적인 교내 활동이 보장됐다. 등록 당시 선교부장을 맡고 있던 정택정 전도사를 빼놓곤 16명의 학생이 밀알 단원으로 있었다. 당시 교무처장이었던 유덕성 교수님께서 지도교수를 맡아 주셨다.

초대 회장을 맡았던 구자영(당시 종교교육과 2학년) 형제는 이듬해 총신대 총학생회장이 됐고 그다음 총신 밀알 회장을 이어받은 박응규 형제도 뒤를 이어 총학생회장이 될 정도로 밀알은 총신대 안에서 영향력 있는 동아리로 성장하며 중심축이 됐다.

총신대에 이어 여러 대학에 동아리를 만들어 갔다. 이미 여러 경로로 밀알 단원이 된 대학생들을 통해 그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더 많은 단원을 확보하게 하고 그들을 조직화해 동아리를 만들어 갔다. 총신대에 이어 전남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칼빈신학대 이화여대 등에서 1년 사이로 결성돼 활동을 시작했다.



하계 수련회와 밀알의 밤

밀알의 첫 번째 하계 수련회는 1980년 8월 18일부터 2박 3일 동안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낙원기도원에서 열렸다. 지금은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캠프’라는 이름으로 모든 밀알의 지역 단원들이 매년 여름 실시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단원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수련회로 시작됐다. 장애인을 많이 이해해서 밀알에 들어온 게 아니라, 잘 모르지만 장애인을 사랑하고 돕고 싶은 마음 하나로 밀알에 들어온 단원들이라 장애인에 대한 여러 형태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장인 나는 물론 임원을 맡았다고 해서 장애인을 잘 알았던 게 아니어서 여러 가지 실수도 잦았고 이를 해소할 길은 교육과 훈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 하계 수련회는 단원을 위한 것이었으며 대체로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첫째는 장애인을 이해하는 교육과 훈련, 둘째는 밀알의 목표와 정신을 공유하고 선교적 비전을 다지는 것이었다. 일시적인 자원봉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밀알로 일하며, 가능하다면 장애인을 위해 평생 일할 전문 사역자가 양성되기를 기대하는 행사였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 한복판에 밀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세계의 모든 밀알 단원들이 가을마다 ‘밀알의 밤’ 축제를 개최한다. 처음 두세 번은 행사를 통해 단원들의 단결과 친목을 돈독히 하고 장애인을 향한 선교적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그 행사가 바로 일일 찻집 이벤트였다. 테이블마다 배치된 단원들은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밀알을 알리고 장애인 선교의 중요성을 설명했는데 이는 장애인 인식 개선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1990년 미국 럿거스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이 총재가 아내와 함께 도서관에서 장애인 관련 서적을 찾는 모습. 세계밀알연합 제공
1982년 11월 20일 서울 종로구 향군회관에서 개최된 밀알의 세 번째 가을 행사는 색달랐다. 이름부터 ‘장애인을 위한 자선 만남의 날’이었다. 우리가 섬기는 장애인들을 시간대에 따라 초청해 테이블에 앉게 하고 손님들이 그들과 대화하고 사귀도록 하는 형식이었다. 오후 3시 5시 7시에는 음악회를 열어 참석자들에게 문화 콘텐츠를 제공했다.

1983년 네 번째 행사부턴 가을 행사가 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첫 번째 밀알 음악회에는 가을치곤 날씨가 꽤 추웠음에도 17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가을 행사는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는 좋은 방편이 됐고 이를 통해 밀알 활동을 알리며 단원과 후원자 확보에도 효과적이었다.

밀알 교실, 수화·점자 공개강좌

1980년대까지 장애인선교란 말이 생소한 용어였고 장애인을 위한 단체나 기관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개척자 정신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1982년 1월 ‘밀알 교실’이란 이름으로 처음 실시한 수화 점자 공개강좌였다. 당시만 해도 수화나 점자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그것을 가르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밀알 내부에서도 처음 기획했을 때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서 배우러 오겠느냐”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강좌를 개설한다고 신문과 방송에 광고했을 때 문의해 오는 전화 내용이 참 재미있었다. 수화에 대해서는 “어떤 종류의 꽃꽂이 교육이냐”고 물었고 점자에 대해서는 점을 치는 글자인 줄로 알고 “얼마나 배우면 철학관을 개점할 수 있느냐”고 묻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 같은 시도는 농아인과 시각장애인의 언어와 문자를 대중에게 소개해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밀알 교실이 적잖은 인식 개선 효과를 발휘하자 다른 단체들도 비슷한 강좌를 개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밀알 교실은 매년 두 차례씩 이어졌다. 교육 내용은 수화와 점자를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 교육을 병행했다. 나중에는 수화의 경우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 실시했고, 점자의 경우는 영어 점자와 악보 점자를 추가했다.

예상치 못했던 수확도 있었다. 밀알의 외연을 넓히면서 새로운 단원을 확보하게 됐고 많은 후원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실로 수많은 실행 단원들이 밀알 교실을 통해 들어왔고 이후 밀알의 핵심 사역자들을 배출했다.

이재서 박사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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