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국민일보

[이지현의 티 테이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김춘수의 詩처럼 우린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이길 바라고, 그런 사람이 옆에 있길 바란다

입력 2019-08-10 04:01

절망의 순간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 우린 마음의 병에 걸리기 쉽다.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근원적인 출발은 ‘나는 사랑(인정)받지 못한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두 가지 요인에서 시작된다.

삶의 의미와 목적은 우리의 삶을 이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것을 찾은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대부분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잘 견딜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를 깨닫는 것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중단하는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자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에게 종종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바쁜 거지?’ 그리고 마음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음은 눈빛 하나에 상처받고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만, 신비로울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인간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추구할 때 살아남을 수 있으며 인간 고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그는 ‘의미 요법’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창안했다.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는 수용소에서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죽는 것을 보고,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신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몸이 건장한 것과 상관없이 앞으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희망하는 사람은 살아남고, 절망하는 사람은 죽어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체험적 가치’를 통해서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삶에 의미가 있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둘째 ‘창조적 가치’를 통해서이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미술, 음악, 저술, 발명 등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삶이 의미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 ‘태도적 가치’를 통해서이다. 자비, 용맹, 유머 감각 같은 태도를 견지하는 데서 삶이 의미 있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고통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므로 고통을 의연하게 견뎌낼 힘을 얻게 된다. 삶에 목적이 있다면 고통과 시련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다. 고통과 시련은 중립적이다. 고통 그 자체는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고통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의 성장과 퇴보가 결정된다.

신앙인들에겐 샛길 없는 통로는 없다. 하나님께선 언제나 한 곳은 열어놓으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이 이기적이거나 죄악이 된다고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다. 바로 예수님께 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받는 존재란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세우신 목표를 발견한다면 마음의 병은 치료될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 살고 있다. 부부, 부모·자녀,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 이들과 인생의 대소사와 감정과 생각을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지지 그룹이 있다면 심각한 질병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내 육체에 가시가 있다’고 말한 사도 바울도 자신의 아픔을 지체들에게 알리고 지지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자. 교회는 성도들이 언제든지 아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체계를 갖춰야 한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우린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지쳐서 쓰러질 때 붙잡아줄 사람, 슬퍼서 울고 싶을 때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내어줄 사람, 깊은 고뇌에 빠져 괴로울 때 손을 잡아줄 그런 사람이 있길 바라고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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