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말, 혹은 뜨다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말, 혹은 뜨다

입력 2019-08-08 00:01 수정 2019-08-0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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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날씨가 서늘해질 즈음부터 덮기 시작해 봄을 다 지내고 난 후에야 아쉬워하며 개어두는 이불이 있다. 촉감과 온도가 알맞게 좋아 여러 해 겨울밤을 함께 보내고 있다. 10년 전 친구가 대바늘로 200코를 잡아 하루 3시간씩 꼬박 한 달 넘게 작업했다는 이 손뜨개 이불은 최근까지 집에 오는 손님마다 보고 놀라워하는 내 최고의 애용품이다. 너비는 두 겹으로 덮어도 넉넉할 정도다. 이를 손으로 뜨기까지의 수고를 생각하면 정성을 넘어 경애(敬愛)의 마음마저 느껴질 정도다.

말, 언어에 대한 고민이 갈수록 깊어가는 요즘이다. 손뜨개 이불을 보며 문득 ‘뜨다’라는 단어에 마음이 갔다. 무엇이 가라 있지 않고 위쪽으로 솟아있다거나, 감은 눈을 벌릴 때. 처음으로 청각을 느낀다거나, 큰 것에서 일부를 떼어 낼 때. 실 따위로 코를 엮어 무엇을 만들 때 쓰이는 말이다. 또 자리를 뜨거나 무엇을 복사할 때, 속마음을 알아보려고 말을 걸어보는 등의 의미도 있다. ‘밥 한술을 뜨다’와 같은 말에서의 ‘뜨다’는 애잔함과 뭉클함을 주기도 한다.

말이라는 단어와 ‘뜨다’라는 동사의 용례를 같이 생각하며 말이나 언어 역시 무엇을 뜨듯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는 수고로 지어지는 것임을 깨닫는다. 뜨개질이 오랜 시간 한곳에 머물러 앉아 인내와 끈기로 한 코씩 면을 만들어 나가듯, 그렇게 말과 글을 짓는다면 어떨까.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가 주는 힘은 분명 누군가를 넉넉히 감싸 안아주고도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담긴 든든한 말 한마디 역시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평소 쌓인 인격에서 무심코 떼어져 나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생각해본다. 또 내가 한 말이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와서 내게 들려주는 말도 주섬주섬 챙겨 듣는다. 한 마디가 나갔을 뿐인데 무수한 말이 돼 돌아오기도 하고, 무수한 마음을 실었는데 어느 한 갈피도 남지 않고 거친 바람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말’(言)이 ‘말’(馬)이 돼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순간들이다. 내 말을 잘못 들은 누구를 탓하기보다 내 마음의 어떠함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 본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으니 말이다.(마 7:18)

뜨개질은 시간을 뜨는 일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뜨는 일이다. 내게 선물하기 위해 친구는 하루 3시간, 꼬박 90시간을 한 이불에 쏟아부었다. 자신의 시간에서 내 시간을 떼어낸 것이다. 친구가 떼어낸 시간이 내게로 와 붙어서 10여년 동안 따뜻함이 더해지고 또 더해지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내가 이 이불을 덮는 동안은. 오랜 시간 한쪽 벽에 기대어 뜨개질하던 친구의 좁은 공간은 내 침대 위에 넓게 펼쳐진다. 또 그 속에서 수많은 꿈과 이야기를 감싸주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말도 그렇다. 시간을 들여야 한다. “밥 한술 뜨고 가라”는 말처럼 내게서 나간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배부르게 하는 말이 되려면 그만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가마솥에 밥을 짓듯 말을 잘 고르고 씻고 안치고 불을 지피고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 삶의 자리에 시간과 공간의 성소를 짓는 것과 같다. 말하는 것 또한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말을 꼭 해야 하는 자리에서 말을 잘하려다 보니 평소 말이 없어지고 종종 더듬거리는 상태에 이르곤 한다. 그런데 한편 이 어버버하는 상태가 즐겁기도 하다. 엉성함 사이에서 내 마음을 수선할 수 있는 시공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점점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말은 줄어들고 나를 향해 골똘해지는 시간이 늘어난다. 말이 나가기 전 마음 다듬는 시간을 뜨는 것이다. 성기게 뜬 것은 성긴 대로, 촘촘히 뜬 것은 촘촘한 대로 알맞은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내가 뜨고 있는 시간이 아무의 시간에 잇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주련 대표 (성서유니온선교회)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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