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역사 속 예수의 흔적찾기

국민일보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역사 속 예수의 흔적찾기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게르트 타이센 지음/이진경 옮김/비아

입력 2019-08-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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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의 나사렛 예수는 사회적 약자에겐 희망을 전했고, 부패한 종교인과 통치자에겐 철퇴를 가했다. 책의 주인공 안드레아는 예수의 가르침을 정리하며 그가 철학자나 작가, 예언자 그 이상의 존재라고 확신한다. 사진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동상. 픽사베이

인류 역사 가운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 혹은 기독교의 창시자이자 성인으로 여겨진다. 예수가 활동했던 당대에선 그를 어떻게 봤을까. 시대의 예언자나 고행자, 혹은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테러리스트이자 미치광이로 불리지 않았을까. 역사 속 예수의 흔적을 추적하는 책이 나왔다. 독일 신약학자 게르트 타이센(76)의 저작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비아)다.

1986년 출간된 이 책은 독일에서 75쇄를 찍고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덴마크어 등 19개국 언어로 번역된 ‘현대판 고전’이다. 역사 소설로 역사적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예수와 당대 시대를 그려나간다. 소설이란 형식을 취했지만 저명한 성서신학자가 쓴 글인 만큼 이야기 근거는 탄탄하다. 복음서뿐 아니라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유대 철학·신학자 필론,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문헌 등이 다수 인용됐다. 이러한 면에서 본문은 독자에게 역사 속 예수의 흔적 및 1세기 팔레스타인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부자 청년 안드레아가 로마 감옥에 구금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곡물상인으로 하인들과 예루살렘을 지나던 그는 로마의 식민 통치 반대 시위대 속에 있었다는 이유로 로마군의 심문을 받는다. 옥에 갇힌 지 일주일쯤 지나자 주인공은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던 지방 장관 본디오 빌라도를 재판정에서 마주한다. 빌라도는 안드레아에게 석방을 전제로 본인 관할 지역에서 일어나는 종교 운동을 조사할 것을 제안한다. 유대인의 반발 없는 수월한 식민 통치를 위해서였다. 처음엔 유대인으로서 로마인 첩자 노릇을 할 순 없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하지만 이내 가족 및 예루살렘 시위대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의 안위를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석방 직후 안드레아는 유대인의 종교 운동을 조사하는 일에 본격 뛰어든다. 첫 과제는 유대교 일파인 ‘에세네파’ 연구다. 그는 광야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들의 내세관과 정치관을 파악 후 보고서를 작성해 로마에 전달한다. 저자는 주인공의 조사 과정에서 마주친 인물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사두개파’ ‘바리새파’ ‘열심당’ 등 유대교 분파의 사상과 활동도 자세히 기록한다.

가령 바리새파인 바울의 스승 가말리엘을 등장시켜 율법의 의미와 적용에 관해 토론하는 식이다. 또 세례 요한의 죽음과 포도원 품꾼 비유 등 복음서에 등장하는 사건과 예화의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내용으로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 유대인 사회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주인공은 조사를 진행할수록 나사렛 예수란 인물이 유대와 사마리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는 가버나움과 벳세다에서 예수가 행한 기적 소식을 접하고 미신적이라며 비웃지만 사회적 약자를 향한 가르침에는 깊이 공감한다. 안드레아는 로마 제국이 혹여라도 예수를 위험분자로 판단치 않도록 일부러 보고서에 ‘방랑 철학자’ ‘농민 작가’로 낮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예수는 메시아 운동을 벌인다는 이유로 로마군에 체포된다. 안드레아의 보고를 참고한 빌라도는 예수와 로마 반대 운동을 벌이다 체포된 시위대 중 누구를 사면할지 대중에게 물어 소요를 무마코자 한다. 그러자 유대인은 시위대 핵심 인물이자 안드레아의 친구를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이 친구의 이름은 ‘바라바’다. 결국 죄 없던 예수는 시위대 2명과 시내 변두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극형을 받는다.

이야기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예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초대교회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18개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 시작마다 동료 신약학자 ‘크라칭어’의 의견에 대한 답변을 실었다. 본문에 대한 크라칭어의 신학적 지적을 수용하거나 반박하는 내용이다.

놀랍게도 크라칭어는 저자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저자는 마지막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허구의 형상이 진리를 구현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요. 감사했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의 진면목을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 저자 게르트 타이센의 박식함에 경의를 표한다. 논문처럼 본문에 자세한 각주가 달려 있어 해외 신학대 교재로도 쓰이지만 소설 형식인 덕에 술술 읽힌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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