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아베는 한국에 불확실성을 수출했다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아베는 한국에 불확실성을 수출했다

입력 2019-08-09 04:01

트럼프의 무역전쟁 모방해 경제전쟁 걸어온 아베
관세폭탄 터뜨린 미국과 달리 불확실성을 슬며시 던졌다

불확실성은 불안감 퍼뜨리고 불안의 확산은 분열을 부른다
아베의 궁극적인 노림수는 한국사회의 갈등과 분열일 것


버락 오바마는 2016년 유엔총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세계가 민족 인종 종교 같은 해묵은 구분선을 따라 나뉘고 결국 갈등으로 퇴보해선 안 됩니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번 세기에 인류의 진보를 위한 기반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지 싶다. 몇 달 뒤 그는 미국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갔고 이후 자유의 확산과 인류의 공영을 역설하는 세계적 지도자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가 열리면서 울림을 갖지 못했다. 자국 우선주의에 구분선은 더욱 짙어졌고 보호무역이 자유시장을 허물어갔다. 오바마의 연설과 반대로 치달은 지 3년이 된 지금,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성한 곳이 별로 없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전쟁을 넘어 환율전쟁에 돌입했다. 유럽은 브렉시트 해법을 찾지 못해 경착륙의 벼랑을 향해 가고 있다. 중동에선 각국 선박이 늘 다니던 호르무즈해협을 지나기 어려워졌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한국에 걸어온 경제전쟁, 이런 흐름에서 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해야 할 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를 외국 정상 중 가장 먼저 찾아갔다. 이렇게 바뀔 세계무대가 자신의 꿈인 강한 일본과 동북아 패권에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트럼프 시대에 누구보다 충실히 적응했고 트럼프 방식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단순히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 중국과 관세전쟁에 나선 게 아님을 세상은 안다. 슈퍼파워 자리를 넘보는 중국의 성장을 힘으로 누르는 데 목적이 있다. 징용 문제는 일본이 경제전쟁을 시작한 방아쇠 정도였을 것이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과 같은 3만 달러대로 올라서고 몇 년 뒤면 추월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시점에 방아쇠를 당겼다. 트럼프가 이미 자유시장 질서를 흔들어놓은 판에서 아베는 부담 없이 자유무역 원칙을 깨뜨렸고, 트럼프가 그랬듯이 경쟁국을 공격하는 무기로 무역을 꺼냈으며, 트럼프가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를 겨냥한 것처럼 한국의 성장엔진인 반도체를 타깃으로 삼았다. 유일하게 차별화한 부분은 구체적 전술이다. 관세폭탄을 연달아 터뜨리며 대놓고 항복을 요구하는 트럼프와 달리 아베는 한국에 공 하나를 슬쩍 던졌는데, 그것은 ‘불확실성’이었다.

아베 정부는 수출관리란 명목으로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민간에서 자유롭게 이뤄지던 소재·부품 수출의 길목을 정부가 틀어쥐었다. 수출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수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낼 뿐이다. 수출을 관리하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반도체 소재 수출 허가를 내주면서 규제 품목을 늘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보냈다. 계속 수출이 이뤄질지, 더 많은 수출이 막힐지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 기업이 생산 차질을 겪는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영원히 그런 일은 없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아베의 목적은 소재 수출을 막는 게 아니라 불확실성을 한국에 수출하는 거였을 수 있다. 시장이 가장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은 두 가지 상황을 초래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해서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고, 기업과 사람들 사이에 광범위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공동체에 불안감이 확산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분열이다. 트럼프처럼 대놓고 때리면 오히려 맞는 사람들을 뭉치게 하지만 때릴 듯 말 듯 하면 책임과 해법을 둘러싼 논쟁이 갈등을 부른다. 아베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한국사회의 분열일 것이다.

임진왜란부터 경술국치까지 일본이 한반도 공략에 성공할 때마다 조선은 당파와 붕쟁으로 갈라져 있었다. 불확실성을 슬며시 들이민 아베는 역사적 경험에서 그 방식을 택했을 터이다. 대응하려면 우리도 역사적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사실상 전체주의 국가처럼 정부의 통제가 먹혀드는 사회다. 나는 그것이 건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끄럽더라도 치열한 비판과 공방이 벌어지는 쪽에 더 많은 잠재력이 있다. 한국은 그런 역동성을 발판으로 여기까지 성장해 왔고, 지금의 상황을 헤쳐 나갈 힘도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건강한 비판과 건강한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역동성이 내부 갈등만 키워 분열로 치닫는 상황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장점을 아베는 약점으로 보았다. 결과는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정체 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 산업은 일본의 경제보복 덕에 생태계를 바꿔낼 계기와 동력을 얻었다.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인식이 상당히 해소될 테고,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상생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으며, 중소기업계가 그토록 외쳐도 꿈쩍 않던 규제들이 풀려가고 있다. 불확실성이 경제를 잠식하지 않도록, 불안감이 갈등을 부추기지 않도록 대처한다면 결코 부정적이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모든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위기도 그렇다.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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