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천종호] 강도 피해자가 너의 이웃이다

국민일보

[국민논단-천종호] 강도 피해자가 너의 이웃이다

입력 2019-08-13 04:04

덕과 선 바탕으로 하는 성품을 빼면 인간은 정체성 없는 유령과 별반 차이가 없어
덕의 윤리를 시급히 회복하고 영혼에 탁월한 성품을 새겨 어디서나 발현되도록 해야


인간이 죽어 천국에 갈 때 살아서 성취한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땅에 둔 채 생애의 ‘기억’과 삶에서 성취한 ‘성품’만 가지고 간다. 만약 영혼이 기억과 성품조차 없는 상태로 천국에 간다면 천국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 동일한 유령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곳일 뿐이어서 갈망하며 가고 싶지 않다. 반대로 천국에 갈 때 우리 생애의 기억과 성품을 가져가야 한다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땅에서 성실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성품의 궁극적 성취 기준인 ‘텔로스(telos, 목적)’에 도달할 수 없으나, 천국에 가면 미완성의 성품을 완성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가능한 한 성품의 탁월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성품의 탁월한 상태를 ‘덕(arete)’이라고 한다. 플루트의 텔로스는 최상의 연주인데 플루트가 제대로 연주되기 위해서는 조율돼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그 본유의 텔로스가 있고 그 텔로스에 합치되기 위해 성품을 탁월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 덕을 연마하여 텔로스를 이루겠다는 것은 궁극의 인간성을 완성하겠다는 뜻이 된다.

개별 인간이 자신의 텔로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자신의 정체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성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정체성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를 구성하는 좋은 시민’을, 공자는 ‘군자(君子)’를,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전제한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을 전제로 그에 맞추어 아름답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덕을 제시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정의·용기·절제’를, 공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기독교에서는 ‘믿음·소망·사랑’을 들었다.

그럼 믿음·소망·사랑의 덕을 갖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품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답을 들려준다. 어느 날 율법교사 한 사람이 예수와 유대 율법의 대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하여 대화하다 예수에게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는 어느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사마리아인이 강도 피해자를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죽기 일보직전 상태로 길거리에 버려져 있었는데, 종교직무 관련자들이고 동족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도 그냥 지나쳤지만 동족 아닌 사마리아인은 피해자를 구조해 주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마리아인이 피해자를 구조하는 내용이다.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 길에 쓰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피해자를 보자 불쌍한 마음이 들어 즉시 그에게로 다가가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천으로 싸맸고, 그런 다음 자기가 타고 있던 짐승에 피해자를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함께 주막으로 가서 밤새도록 피해자를 간호했으며, 이튿날 볼일을 보러 가기 전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피해자를 돌보아 달라고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를 테니 그 돈으로 부족하였다면 추가로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였다는 것이다.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예수가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다. 먼저, 이웃의 경계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신분과 정체성은 삶의 경계를 만들고, 경계는 영역을 안과 밖으로 나누어 안쪽은 포용하고 바깥쪽은 배제하게 만든다. 사마리아인은 이웃의 경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서로 돕고 도와주는 사람을 이웃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상대방이 되어주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이웃으로 보았다. 다음으로는, 탁월한 성품으로 자신을 완성하라는 것이다. 사마리아인은 내 민족이 아니라고 변명하거나 골치 아픈 일에 개입되기 싫다는 이유로 강도 피해자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 자신의 업무를 잠시 미루고 위급한 사람을 돌보아줄 정도의 여유와 품격이 있었으며, 선을 베풀되 한 치의 주저함이나 거침이 없이 실행하는 탁월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예수가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통해 가르치고자 한 바는 영혼에 탁월한 성품을 새겨 언제 어디서나 그것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선이 없는 정의사회’와 ‘심화되는 권리사회’는 인간의 성품 함양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경향이 있고, 도덕을 ‘윤리’가 아니라 ‘도덕 논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간에게서 덕과 선을 바탕으로 하는 성품을 빼면 인간은 정체성 없는 유령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덕의 윤리가 시급히 회복되기를 바란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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