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가쓰라-태프트 밀약

국민일보

[한마당-김의구] 가쓰라-태프트 밀약

입력 2019-08-13 04:05

1905년 7월 29일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미국 육군성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도쿄에서 밀약을 맺었다. 러일전쟁이 종전을 향하던 시기였다. 밀약의 요지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통치를 일본이 인정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 움직임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정식 조약이 아닌 외교 비망록 형식의 밀약에서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 지역의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는 문구에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1882년 조미수호조약에 타국의 침해가 있을 경우 서로 돕는다고 명문화한 ‘우호적 중재’의 의무를 포기한 셈이 됐다.

미·일의 짬짜미는 그해 9월 5일 미국이 주선한 포츠머스강화조약에서 구체화됐다. 러시아는 일본이 조선에 대해 지도·보호·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승인했다. 같은 해 11월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했다. 미국은 사실상 묵인했고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첫 번째 국가가 됐다. 가쓰라가 1908년 두 번째 총리가 되고 태프트가 1909년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에 오른 1년 뒤 일본의 한국 병탄이 이뤄졌다.

밀약의 전모는 미국 외교사가 타일러 데닛이 1924년 쓴 논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대일 비밀조약’에서 드러났다. 밀약은 러시아의 남진 저지를 최우선시한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정책의 산물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일전쟁 초기부터 러시아에 경고를 보냈고 “일본 제국은 미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공언했다. 또 대한제국이 무능하며 한국민은 자치에 적합지 않다는 인종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5년 주미대사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은 “100년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미국 측의 역사적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에 대한 미국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밀약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노골적으로 자국 이익을 내세우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묵인하고, 한·미 군사훈련에 불만을 터뜨렸다. 북한도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국력이 턱없이 모자라고 사분오열돼 국치를 겪어야 했던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쳐지는 건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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