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공무원들 “돈이 내려왔는데 안 쓸 이유가 없지 않나”

국민일보

[이슈&탐사] 공무원들 “돈이 내려왔는데 안 쓸 이유가 없지 않나”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 시행 1년 점검 ② 준비 안된 재정사업

입력 2019-08-13 04:03

“우리도 헷갈렸다.” 식당, 편의점, 카페 등 영세 사업장들이 대거 정부 지원을 받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신청을 내자 업무를 진행했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했던 말이다.(국민일보 12일자 1·2면 참조) 구체적 사업을 설계·실행하고 있는 담당자들 사이에선 “이런 작은 구멍가게까지 지원을 해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고백도 나왔다. 문제의식을 느꼈다는 한 공무원은 “그래도 이미 돈이 내려왔는데 안 쓸 이유도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사업의 취지가 지자체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과도한 예산이 우선 투입되다 보니 ‘신규 채용인원’ 증가라는 실적 위주로 사업이 이뤄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자리 만들기 예산이 집행됐고, (지자체 입장에선) 돈을 안 쓰면 바보가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전 준비나 사후 관리가 미흡했고, 결과적으로 지자체 공무원의 역량 차이에 따라 성패가 나뉘는 정책 불확실성이 발생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알아서 하라는 정부, 모르겠다는 지자체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기본계획을 내리면 지자체가 세부 사업을 설계하고 지자체별로 꾸린 청년일자리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가 심사 및 현장점검, 성과관리까지 하는 체계로 이뤄진다. 최소 3차례 문제 사업장을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된 것인데 정작 현장 담당자들이 “실제로는 판단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호소했다.

대표적으로 꼽은 문제는 모호한 기준이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사업 모집 공고를 본 자영업자들한테 문의 전화가 왔을 때, 이런 업종까지 지원해줘야 하는지 기준이 조금 의아했다”며 “생각지 못한 부분이 문제점으로 노출됐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공무원은 “판단하기 곤란했지만 지침 상 배제할 근거가 없었다”며 “해서는 안 되는 업종 기준이 없다 보니 신청한 사업주들에게 탈락됐다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도 “영세업체가 선정되다 보니 어디까지 지원을 해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예산이 이미 내려온 상황에서 사업 참여 신청을 안 한 (건실한) 업체에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는데다 심사 결과 부적합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침상 문제가 없는데 지역에 할당된 예산을 안 쓸 수도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행안부는 ‘생계형·한시적 사업장 배제’ ‘지속가능성 있는 사업장’ 등 최소 기준만 제시했다. 유흥업 숙박업 등 일부를 부적합업종으로 명시했다. 청년일자리 사업 취지에 맞는 사업장인지 여부를 각 지자체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담당자 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이 먼저 내려 오다 보니 실적을 우선 생각하게 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추가경정예산 등 추가예산을 따내야 하는 지자체 입장에선 고용실적과 예산 집행률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참여 기준을 좁게 해석하지는 않는다”며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외 업종만 아니면 다 사업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정부는 ‘사안의 중대성’ 등을 들어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했었다.

실적위주 책임전가식 행정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 행안부 사업 평가 때도 지적이 됐었다. 2018년 하반기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 평가에 나섰던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전통시장 일자리 등 단순 인건비 지원 사업이 많이 들어와 마케팅 업무 쪽으로 인력을 재배치하라는 컨설팅을 해 준 적이 있다”며 “지자체에서 너무 기본적인 지식 없이 정책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 특화된 일자리를 만들어 역량을 키우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인데 지자체에선 이에 대한 수요 분석이 사실상 거의 안 돼 있었다. 사업 운영 담당자들의 역량이 부족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며 “중앙에서 돈 만들어 지방에 뿌리고 책임지라 말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심미승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도 “지자체에서 청년을 위한 일자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고민 없이 사업을 시행하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참여하게 되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의 여러 대책들과 비슷한 수준의 단순 임금 지원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중간 평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역에서 제대로 설계가 되지 않은 사업을 걸러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예산이 계속 투입되는 상황에서 사업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 중간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나의 모델만 제시했을 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지속가능한 일자리 제공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와 함께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사업 축소를 대비해 지속가능한 사업이 되도록 리모델링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안부, ‘문제 사업장 지원 배제’ 해명

행안부는 12일 설명자료를 내고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은 한시적·생계형 일자리가 아닌 지속·발전가능성 있는 일자리를 지원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라며 “일부 운영상 문제가 지적된 사업장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함께 현장점검을 강화해 사업취지와 맞지 않는 경우 지원을 배제하겠다”고 해명했다. 다만 사업 지원이 끊기는 사업장의 경우 근무하는 청년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계속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다른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행안부는 “문제된 사업장 외에도 현장점검을 실시해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 문제점을 적극 보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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