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친일에 친나치 행적까지? 일본 딛고 일어선 세계적 음악가”

국민일보

“안익태, 친일에 친나치 행적까지? 일본 딛고 일어선 세계적 음악가”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 펴낸 김형석 박사

입력 2019-08-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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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선생의 친일은 증거 없는 억지입니다. 최근 반일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 교체를 주장하는 것은 물 들어오니까 노 젓는다고, 분위기에 편승해 자기들 입장을 관철하려는 것입니다.”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김형석(사진) 박사는 1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를 교체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김 박사는 이에 대한 근거를 담아 최근 저서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를 펴냈다.

안익태 선생의 친일 행적은 세 가지가 꼽힌다. 1938년 일본풍의 관현악곡 ‘에텐라쿠’를 작곡하고 지휘한 것, 독일 유학 당시 만주국 참사관 에하라 고이치 집에서 유숙한 것, 1942년 9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해 ‘만주환상곡’을 작곡하고 경축 음악회에서 지휘한 것 등이다.

김 박사는 이에 대해 “일본풍 곡을 만들었다고 친일로 몰 수는 없다. 또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악보는 있지도 않다”고 했다. 이어 “에하라 고이치는 본래 음악을 좋아했고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공부하는 동생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됐고 돕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만주환상곡 작곡과 지휘는 사실이었지만 이는 당시 일제하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8년 후 1960년엔 일본 관서교향악단과 교토, 오사카, 고베 등지를 순회할 때 ‘한국환상곡’의 4장 한국 가사를 일본인 합창단원들이 한국말로 노래하도록 했다”면서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극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안익태 선생은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작은 부끄러움을 감수한, 일제의 우민화 정책을 딛고 일어선 세계적인 음악가”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이번 저서에서 안익태 선생이 친일을 넘어 친나치라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안익태 선생이 입신양명을 위해 나치 독일 ‘제국 음악원’ 회원이 됐다고 하지만 당시 제국음악원 회원은 17만명이었다. 독일에서 지휘자 겸 작곡가로 일하려면 회원증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또 “에하라가 일본의 독일정보망 총책임자이고 안익태 선생이 공작원이라는 것은 의혹일 뿐 이를 주장한 독일의 한국학자 프랑크 호프만이 증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안익태 선생이 2년간 미국에 입국 금지된 것도 당시 일본 여권을 소지한 데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어서 그랬다”며 “1950년 한국 여권을 만든 후에는 미국 비자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안익태 선생이 ‘히틀러 탄생 음악회’에서 지휘했다는 주장에 대해 김 박사는 해당 음악회인 ‘1944 파리 베토벤 축제’의 전단 어디에서 히틀러 생일이라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애국가에 대한 오해도 밝혔다.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미 1976년 음악학계에서 사실무근으로 이미 판명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온 국민이 애국가를 부르며 한마음이 돼야 할 이때 해묵은 주장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려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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