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이승우] 평가의 기준

국민일보

[너섬情談-이승우] 평가의 기준

자의적이고 유일한 기준만으로 남을 평가하는 세상은 위험… 사람 존중하는 균형감각 필요

입력 2019-08-14 04:02

가까운 몇 사람과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사람은 현실을 잘 반영한 주제와 몰입도 높은 사건 전개를 칭찬했다. 다른 사람은 연출력과 연기력을 치켜세웠다. 어떤 사람은 음악이 최고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소품을 사용하는 섬세한 감각이 남달랐다고 했다. 누군가는 부자연스러운 서사의 전개를 문제 삼았다. 어떤 사람은 상징의 범박함을 지적했다. 누군가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개연성에 무리가 있어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은 그럼에도 주제의식이 시의적절해 훌륭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일은 문학상 심사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어떤 문학작품에 대해 이러이러한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저러저러한 요인이 거슬려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저러저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러이러한 장점이 있어 지지한다고 한다. 지지 이유나 반대 근거가 아주 사소한 것일 때도 의외로 많다. 지워도 상관없을 것 같은, 어떤 풍경에 대한 한 문장의 잘못된 묘사가 그 작품의 많은 훌륭한 점을 부정하게 하기도 하고, 지워도 상관없을 것 같은, 어떤 풍경에 대한 한 문장의 탁월한 묘사가 그 작품의 많은 약점들을 가리기도 한다.

아무리 탁월한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도 기계적으로 균형적이지는 않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예술작품은 기계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의식적 평가의 자리에서도 무의식적 취향과 기호는 힘을 발휘한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고나고 후천적으로 습득한 자기만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영역의 탁월한 성과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의 대수롭지 않은 성과에 대해서는 후하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소한 것도 크게 부각하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훌륭한 것도 시시하게 본다.

새로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안정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불안정하고 부실하다는 이유로 결코 선택하지 않을 작품을, 시도가 새롭다는 이유로 선택한다. 그래서 한 심사 자리에서는 새롭다는 이유로 선택되는 작품이 다른 심사 자리에서는 새롭기만 할 뿐 미숙하다는 이유로 거부되는 일이 발생한다. 어떤 심사 자리에서는 안정감 있다는 이유로 선택되는 작품이 다른 심사 자리에서는 구태의연하고 빤하다는 이유로 거부된다.

사람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일에도 이 원리는 작동한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사소한 것도 크게 부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가치는 훌륭한 것도 시시하게 본다. 용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는 문제 삼지 않고 미모만을 침소봉대해서 평가한다. 이념적, 종교적, 당파적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성품을 갖고 있든 자기와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거부한다. 그래서 자기와 지지 정당이나 종교가 같으면 파렴치범도 옹호하면서 자기와 지지정당이나 종교가 같지 않으면 성자와 같은 이도 매도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특정 지역 사람을 미워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그 사람의 다른 어떤 훌륭한 덕목도 살피지 않는다. 자기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그 사람의 어떤 추악한 패악도 눈감아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은 단세포 동물이 된다. 사람이 다양한 입장과 정체성을 가진 복합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쉽게 잊혀진다. 우리는 그저 특정 정당의 일원으로 간주되거나 특정 종교를 가진 자로 규정되어 사랑받거나 미움 받는다. 사랑도 미움도 온당하지 않다. 누구도 기독교 신자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 노인일 뿐이거나 회사원일 뿐이거나 채식주의자일 뿐이거나 서울시민일 뿐인 사람은 없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더 중요하고 다양한 요소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자의적이고 유일한 기준만을 타인을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기준으로 삼는 세상은 무섭고 위험하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규정하고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다원화된 사회를 살고 있지 않은가. 넓고 복잡하고 깊고 섬세한 우주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정도의 균형감각은 가져야 한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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