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연하] 전시는 계속돼야 한다

국민일보

[청사초롱-최연하] 전시는 계속돼야 한다

입력 2019-08-14 04:02

1937년 여름, 뮌헨에서 나치가 기획한 두 개의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전시가 열린다.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미술을 체제 유지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위대한 독일미술전’과 ‘퇴폐미술전’을 동시에 기획한다. 위대한 독일미술에 선정된 미술가 580명의 작품은 넓고 시원한 공간에 디스플레이되었고, 퇴폐적인 작품들은 뮌헨 대학 2층에 있는 어두침침한 고고학 연구소에 진열되었다. 다양한 국적의 미술가 112명으로 구성된 퇴폐미술전에 전시된 700여점의 작품이 비좁고 낡은 공간에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전시되었다면, 순수한(?) 독일 혈통의 미술가들로 구성된 위대한 독일미술전은 쾌적한 공간을 차지한 셈이다. 철저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진행된 두 전시는 미술을 정권 강화를 위해 정치하게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뭉크, 피카소 등 후대에 미술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다수의 작가들이 나치가 추방하려고 한 퇴폐적인 작가로 구분되었다니 아찔할 뿐이다. ‘예술과 학문, 그리고 학문전달은 자유’라고 1919년 바이마르헌법에서 예술의 자유를 기본법으로 수용한 지 20년도 채 안 되어 기획된 전시였다.

퇴폐미술전이 개최된 지 82년이 지난 올여름에 일본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서 ‘표현의 부자유, 그 후’가 개최되었다. 예술 창작에서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모색하는 전시였다. 불행히도 이 전시는 막을 열자마자 폐쇄된다.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작품뿐만 아니라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일본 정치권이 민감해할 작품들도 다수 보인다. 특히 눈길이 가는 작품이 있는데, 안세홍의 사진 작품이다. 한반도 어딘가에서 태어나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로 살다가 전쟁이 끝나고 중국 땅에 머물 수밖에 없는, 고향과 모국어와 소녀 시절을 모두 잃어버린 재중 위안부 할머니들을 촬영한 사진이다. ‘겹겹’의 고통과 고독을 안고 이국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위안부 할머니를 촬영한 안세홍의 ‘겹겹프로젝트’는 일본 내에서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갖은 검열과 통제와 탄압을 받아야 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포함한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는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저지하고 검열했을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의 자율성을 탄압한 ‘표현의 부자유’를 증명한 전시가 되고 말았다.

이즈음에 다시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아이 웨이웨이의 지난 행보를 꼽아본다. ‘세계의 영향력 있는 예술인 100인’에 선정될 만큼 중요 인물임에도 중국 내에서 그의 작품은 엄격한 검열에 시달려야 했고, 육신은 출국 금지의 처지를 좀체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탄생시키는 작품들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의 주목을 이끌었다. 중국 정부의 탄압과 억압에도 2015년 영국 왕립 예술원에서 개최된 개인전에서 예술 표현의 한 정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2008년 쓰촨 지진으로 사망한 수천명의 어린 영혼을 기리고자 사고현장에서 가져온 철근으로 만든 작품 ‘일직선으로 곧은(Straight·2008~2012)’이다. 철근 무게만 자그마치 200t. 작가는 다루기 까다롭고 무거운 철근을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 4년에 걸쳐 작품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작품이 놓인 전시장 벽면에는 지진으로 사망한 수천명 어린이의 이름과 성별, 나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2008년,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아이 웨이웨이는 낱낱이 밝혔다. 이후 작가는 중국 정부로부터 폭행과 감금, 억류,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만큼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대중과의 깊은 연대와 소통을 끝끝내 고수한다. “표현의 자유가 없이 의미 있는 예술은 없다… 예술은 항상 이긴다.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예술은 남아있을 것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과 세계 각지에서 추방당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아이 웨이웨이의 말을 되뇌어 본다.

최연하 사진평론가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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