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민지] 쓰레기와 사는 사람들

국민일보

[창-박민지] 쓰레기와 사는 사람들

정말 할 만큼 했는데도 도저히 해결 못하는 상황… 사회적 약자에게만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입력 2019-08-17 04:05

여든을 한 해 앞둔 박씨는 스무 살에 시집가서 7년 만에 첫딸을 낳았다. 어렵게 얻어 더 귀했다. 그런 딸을 주변에선 ‘정박아’(지적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라고 불렀다. 박씨는 “딸이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조금 늦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딸 얘기만 하면 자꾸 울었다. ‘그렇게’ 낳아 미안하다면서.

올해 쉰세 살인 딸 서씨는 엄마와 함께 살다가 3년 전쯤 남편과 분가했다. 서울 강북 끄트머리의 한 아파트에 집을 얻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남편은 먹고사는 문제로 너무 바빴다. 엄마는 딸의 집에 일주일에 한 번꼴로 들렀다. 하루에 5만원 정도를 버는데 그 돈으로 딸이 먹을 음식을 해놓고 돌아오곤 했다. 딸은 중학생 때부터 액세서리를 모았다. 엄마는 “딸이 항상 반지 같은 걸 책상에 가지런히 진열해놓곤 했었다”고 기억했다.

2년 전부터 딸의 집에 액세서리가 부쩍 늘었다. 여기선 악취가 났다. 누군가 내다 버린 쓰레기였다. 엄마는 “나와 떨어져 살게 됐을 무렵 사위도 집을 자주 비워 외로웠던 것 같다”고 했다(이 무렵 서씨의 남편은 알코올중독에 빠졌다). 엄마는 딸의 집에 더 자주 갔다. 딸이 주워 온 것들을 버리고 물걸레질을 했다. 딸의 행동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저장강박증’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딸은 언제나 남들과는 조금 달랐으니까.

그 무렵, 엄마가 한동안 방문하지 못한 서씨 집에서 악취가 나고 벌레가 들끓어 이웃이 경찰에 신고했다. 한밤중에 경찰이 들이닥쳤고 그날 이후 딸의 강박증상은 극도로 심해졌다. 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쓰레기장에 갔다.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온갖 쓰레기를 닥치는 대로 집어왔다.

이웃들은 노모를 찾아갔다. “쓰레기를 당장 해결하라”고 윽박질렀다. 박씨는 “내가 부족해 생긴 일”이라며 조아렸지만 사과로 해결될 게 아니라는 고성이 돌아왔다. 저장강박증 실태를 취재하느라 찾아갔던 날, 기자와 함께 있는 순간에도 노모는 계속해 누군가로부터 욕을 들었다.

집 안을 보니 이웃의 울분이 충분히 이해됐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서씨 집 천장에서 벌레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악취가 심해 마스크 없이는 근처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벌레는 좁은 틈만 보여도 비집고 기어 나왔다. 그 집에 아주 잠깐 머물렀을 뿐인데 청바지 안에서 벌레가 툭툭 떨어졌다. 박씨가 미안해할까 봐 조용히 털어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이걸 이웃들은 2년이나 버텼다. 정말 사과로 될 일은 아닌 듯했다.

사실 엄마도 집이 이 지경일 줄은 몰랐다. 저장강박증은 폭력성과 함께 찾아왔다. 딸은 어느 순간부터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막아섰다. 집에 들어가려 하면 욕을 하며 괴성을 질렀다. “반찬만 주고 가겠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해도 밖으로 나와 받아들고는 쌩 들어갔다. 문이 잠긴 딸의 집 앞을 서성이다 발길을 돌려야 했을 때,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람들은 박씨를 탓했다. 장애가 있는 딸을 내버려 뒀다는 투로 말했다. 여기에 적을 순 없지만, 노모에게는 아픈 딸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 사연을 이웃에게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분가하던 날, 아파트 주민대표에게 “내 딸 잘 부탁한다”는 뇌물성(?) 음료를 건네며 엄마는 속으로 울었다. 그런 노모에게 아파트 관계자는 두 가지 선택지를 줬다. 최선은 딸이 이사를 하는 것이었고, 차선은 노모가 딸의 집을 수시로 치워주는 것이었다. 이사든 청소든 박씨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여든이 다 된 노모가 아픈 딸을 홀로 돌보는 동안 모두가 뒷짐만 졌다. 쓰레기장이 된 집 탓에 많은 이가 피해를 입었고 누군가 이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면 그것이 노모만의 일이어선 안 될 것 같았다. 경찰, 구청, 주민센터, 이웃 모두 서씨의 상태를 알았다. 앓고 있는 병의 증상을 이유로 그가 환자이자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픈 서씨에게도 온 동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한 이웃은 노모를 향해 “‘정상이 아닌’ 딸을 왜 방치하느냐”고 소리쳤다. 엄마는 뒤돌아 작은 목소리로 “장애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그 혼잣말은 “정말 할 만큼 했는데…”로 들렸다.


박민지 온라인뉴스부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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