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배고파 탈북했는데 서울에서 굶어죽다니

국민일보

[사설] 배고파 탈북했는데 서울에서 굶어죽다니

입력 2019-08-14 04:01
북한 눈치 보느라 탈북민 관리 소홀했다면 문제… 대북 인도적 지원 하며 탈북민 아사 방치하는 것은 모순

탈북민 40대 여성과 6세 아들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들 모자가 살던 서울 봉천동 임대아파트에는 고춧가루 외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통장은 지난 5월 마지막으로 3858원을 인출한 뒤 잔고가 0원으로 돼 있었다. 한 달 9만원인 월세와 수도요금이 수개월째 밀려 몇 달 전 단수 조치가 된 집 안에는 마실 물조차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황이나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부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이 아사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배고파 목숨 걸고 탈북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굶어 죽은 것이다. 이들이 사회적 취약계층인 여성과 어린이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하다. 2009년 탈북한 이 여성은 중국 교포 출신인 남편과 이혼한 뒤 일거리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병을 앓는 아들을 혼자 키우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탈북민 관리에 심각한 허점이 있음이 밝혀졌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면서 우리 이웃에 사는 탈북민이 굶어죽는 것도 모르는 모순도 드러났다. 혹시라도 정부가 북한 정권 눈치를 보느라 탈북민 관리와 지원에 소홀한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미 국무부는 얼마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탈북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끊는 등 홀대하거나 억압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 적도 있다.

탈북민들은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한동안 머물며 적응 교육을 받는다. 하나원을 나온 이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돼 9개월 정도 재정 지원을 받는다. 5년 정도 관할 경찰서의 신변보호 담당관 등이 초기 정착을 관리한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들 모자는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로 전입한 이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숨진 어린이는 어린이집이나 지역아동센터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관악구청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 지원 신청도 돼 있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사각지대로 인해 탈북민 관리가 안 된 부분이 있어서 노력하고 점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무 부처로서 그동안 뭘 하고 있다가 탈북민이 굶어 죽은 뒤에야 점검하겠다고 하는가.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은 현재 여성이 2만3800여명, 남성 9200여명이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만 하지 말고 탈북민부터 돌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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