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광복절 경축사의 일본, 작년엔 단 두 문장

국민일보

[한마당-태원준] 광복절 경축사의 일본, 작년엔 단 두 문장

입력 2019-08-14 04:05

5대 국경일 중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건 광복절뿐이다. 제헌절 경축사는 국회의장이, 개천절은 국무총리가 한다. 3·1절 연설은 대통령이 하지만 이것은 경축사가 아닌 기념사다. 한글날은 2006년 국경일로 격상될 때 말고는 총리가 해왔는데 현 정부 들어서는 한글날 취지를 감안해 축하말씀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렇게 설정된 연설의 격은 광복절의 위상을 말해준다. 그 메시지에 많은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녹색성장, 친서민, 공정사회 등 국정 어젠다를 주로 광복절에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내치보다 외교안보에 치중했다. 무게중심은 단연 북한에 쏠려 있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된 2017년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며 평창올림픽을 대화의 기회로 삼자고 촉구했다. 판문점 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지난해에는 연설의 대부분을 북한에 할애했다. 대화의 성과를 길게 설명하면서 “평화가 경제”임을 역설했고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했다.

광복절 연설이지만 일본에 대한 언급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재작년 경축사는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강제동원과 친일 부역자를 언급했고, “미래를 중시한다 해서 역사 문제를 덮고 넘어갈 순 없다. 제대로 매듭지을 때 오히려 신뢰가 더 깊어질 것이다. 한·일 관계 걸림돌은 과거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일본 정부 인식의 부침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경축사에선 일본이 거의 사라졌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주변국 지지를 열거하다가 “아베 총리와도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고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그 협력은 결국 북·일 관계 정상화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전부였다. 대통령의 어젠다에서 일본 비중이 매우 낮았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광복절 경축사를 앞둔 지금의 현실은 1년 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토록 공들였던 북한은 뒤통수치듯 막말을 내뱉고, 장문의 연설에서 두 줄밖에 할애하지 않았던 일본은 경제전쟁을 걸어왔다. 양쪽 모두 상황을 반전시킬 메시지가 필요하다. 청와대에서 경축사의 마지막 독회가 한창일 텐데, 북한을 향해서든 일본을 향해서든 뜨거운 가슴은 잠시 접어놓기 바란다. 이 연설은 향후 1년간 남북, 한·일 관계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