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수탈, 통계가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일보

“일제의 수탈, 통계가 여실히 보여준다”

‘통계로 보는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사’ 펴낸 송규진 고려대 교수

입력 2019-08-14 04:05
‘통계로 보는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사’를 펴낸 송규진 고려대 교수가 최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그가 원자료로 삼은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손을 올리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규제에 대한 상응 조치로 일본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한·일 양국이 ‘경제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국내에서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한국에 치졸한 경제보복을 했다는 비판론과 일본 덕분에 국제 분업 시스템에 편입된 한국이 역사 청산 문제로 일본의 분노를 촉발했다는 자성론이 공존하고 있다.


두 시각은 일제강점기를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해석하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통계로 보는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사’(표지)의 저자 송규진(57) 고려대 교수는 최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근대화론자들은 일본강점기 일부 조선인의 성공 사례를 강조하지만 그 시대 통계는 대다수 조선인의 삶이 궁핍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대학원에 진학하던 무렵 한 선배에게 조선총독부통계연보를 통째 넘겨받았다. 그때부터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주로 ‘무기’로 사용하는 통계를 바탕으로 한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통계와 대화하는 사학자’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역사학자들은 숫자를 대체로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웃음). 공짜로 연보를 받긴 했는데 처음엔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도 통계와 씨름하며 조선총독부 토지조사사업 중 미개간지를 처음으로 연구해 석사 논문을 썼고, 식민지 무역 구조를 분석한 박사 논문으로 수탈론을 뒷받침했다.

‘통계로 보는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사’는 조선총독부통계연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사회경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표면적으로 통계를 보면 일제강점기에 사회경제가 발전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종합적·심층적으로 보면 통계에 숨겨진 수탈과 차별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토지세 납세의무자 중 200정보 이상 소유한 대지주는 1921년 일본인이 169명, 조선인이 66명이었는데 36년 일본인은 181명으로 증가한 반면 조선인은 49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5단보 이하를 소유한 빈농층은 1921년 47.38%에서 36년 51.49%로 증가했다.

그는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무역량이 급증했고 중공업이 발전했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운다. 그런데 20세기 초반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높았다. 조선의 공업이 발전한 것은 일본이 조선을 전쟁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내재적 산업구조와 관련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책은 수탈과 차별의 역사를 인구 농림수산업 광공업 재정·금융 교통·통신 상업·무역 교육 등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이 책을 본 그의 은사 강만길(86) 고려대 명예교수는 직접 전화해 “자네, 정말 큰일 했네”라고 격려했다.

지난 2년간 매일 돋보기로 자료를 들여다보며 컴퓨터로 작업한 탓에 눈은 침침해졌고 손에는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포기하고 싶을 때 그는 일본 기록작가인 하야시 에이다이 선생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평생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와 위안부 소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한 인물이다. 송 교수는 “선생은 일본 정부와 극우파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사죄하는 마음으로 연구했다. ‘가해자 나라의 학자도 그렇게 열심히 연구했는데, 피해자 나라의 학자인 내가 이 연구를 포기해서 되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한·일 양국의 갈등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일본에는 하야시 선생처럼 과거사를 사죄하는 양심 있는 인사들이 있고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분들도 많다. 또 지금 역사 자체가 지배자인 ‘갑’의 기록에서 점점 ‘을’의 시선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일본이라고 도도한 시대적 흐름을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일본이 과거사 청산에도 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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