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대환] 한·일 경제전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국민일보

[여의도포럼-김대환] 한·일 경제전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입력 2019-08-15 04:01

확전의 요소들을 제거하면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일 청구권 협정과 대법원 판결 모두 존중하는 조치 필요
경제 및 안보협력도 강화해야


일본이 지난 7월 1일 3개 소재 품목의 대한(對韓) 수출심사를 강화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한국을 ‘우대 국가’에서 제외(A급에서 B급으로 강등)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양국 간에는 가히 ‘경제전쟁’이라 할 만한 심각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이미 7월 조치를 ‘경제보복’으로 규정하여 일본제품 불매로 대응하고 있던 차에 8월의 추가 조치는 비록 예상되기는 했지만 사태가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 긴급 소집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일본의 부당한 행위를 강도 높게 질타하며 전면전에 임하는 단호한 입장을 천명하였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과거 불행한 역사를 떠올릴수록 전의가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 국민들에 대한 독전 메시지이다. 대외적으로 반일의 기치를 한층 더 높이 치켜들면서 국내적으로는 친일청산의 미명하에 친일파도 모자라 토착왜구 몰이마저 자행되는 현 상황은 조금만 냉정을 찾더라도 정상적이라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 비상 상황이다. 이날에 앞서 대통령이 주문한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이번 경제전쟁에서 한국은 일본을 이길 수 있는가. 전쟁의 승패는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국민의 단결력에 좌우된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일단 군사력은 별도로 치고, 경제력에서 한국은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손자병법에 비추어 본다면, 정면으로 맞서기는커녕 일본의 힘을 분산시켜 싸우기에도 태부족이다. 일본의 경우는 정면대결로 승리가 반드시 보장되지는 않지만 한국을 분산시켜 싸우면 승산이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힘은 뒤지지만 반일로 똘똘 뭉친 국민의 단결력은 개인주의적 일본 국민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지극히 감정적 계산의 소산이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일본 내 반대 목소리를 퍼 나르기에 급급하고 일본 경제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보도에 열을 올리면서 전연 딴판인 일본 언론의 보도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친일파 몰이가 드세지만 일본에서 친한파 몰이가 없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감정을 앞세우는 경향이 걱정된다는 필자에게 “우리 일본인도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편입니다”라는 오랜 지인의 대꾸가 귀에서 다시 맴돈다.

전략적 입지도 한국이 불리하다. 이번 경제전쟁의 칼자루는 일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칼날을 쥐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힘과 방향에 있어 칼자루를 쥔 일본에 맞서기에는 기본적으로 불리한 형국이다. 8월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가 예상과는 달리 품목을 일괄하지도 특정 품목을 명시하지도 않고 ‘하는 것 봐서’ 상응하는 액션을 취하겠다는 식의 재량권 규정으로 나타난 것 역시 칼자루 쥔 일본의 입지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7월의 조치가 한국 경제의 목줄을 정확하게 겨눈 것처럼 디테일에 강한 일본은 8월의 조치를 통해 경우에 따른 전략적 유연성마저 보유한 셈이다.

이에 대응한 한국의 전략은 총론 위주로 확전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의병이 일어나 불매운동을 벌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안보를 끌어들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일본여행 금지, 도쿄올림픽 보이콧, 나아가 한일 청구권협정 파기, 심지어 샌프란시스코조약 불복에 이르기까지의 빅(big) 카드는 모두가 배드(bad) 카드임이 분명하다. 급기야는 통 크게 ‘평화경제’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시공 이탈의 뜬금없는 전략이다. 일본 경제가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시장이라는 현실인식부터 부정확하다. 손자병법의 기본인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실패했으니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장담은 달콤한 꿈속에서나 들을 소리다.

이렇듯 냉정하게 볼 때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지지 않으려면 길은 하나뿐이다. 비기는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비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확전이 되면 될수록 비기기조차 힘들기 때문에 확전의 요소를 모두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집권당 위원회 명칭에서 치기어린 ‘침략’을 다른 용어로 바꾸고, 범집권세력이 운위한 배드 카드를 모두 집어넣어야 한다. ‘친일파 몰이’를 중단해야 비기는 힘이라도 모을 수 있다. 그러고는 상대의 본심을 파악하여 싸움의 원인을 제거하는 서희의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일본이 전략적으로 말을 바꾸긴 했지만 이미 본심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한일 청구권협정과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존중하는 조치를 취하면 된다. 이미 시행한 전례에 따라 처리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과의 경제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여 지지 않은 싸움으로 매듭짓기 바란다.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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