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남호철] 해수욕장의 변신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남호철] 해수욕장의 변신

입력 2019-08-15 04:03

절기상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8일)가 지난 지 일주일이다. 옛날에는 이 시기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농촌에서는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고, 참깨와 옥수수 등을 수확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산, 계곡, 바다 등으로 더위를 피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철 가장 인기 많은 휴가지 중 하나는 바닷가다. 파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밤바람이 부는 모래밭에 앉아 ‘멍 때리기’만 해도 더위를 잊을 수 있다. 그 바람에 해수욕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문제는 남아 있다. 해변에서 마구 터뜨리는 폭죽과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고성방가, 나뒹구는 쓰레기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러 왔다가 오히려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해수욕장의 인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제 강원도 동해안 대표 여름 휴가지인 강릉 지역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올여름 동해안 6개 시·군 해수욕장의 누적 방문객은 1554만3333명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강릉지역 내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은 564만900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0.7%나 줄었다. 일본 여행 보이콧으로 기대했던 반사이익도 없었다.

날씨 변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됐지만 바가지요금도 크게 부각됐다. 강릉시 온라인 자유게시판에는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 숙박비가 1인당 4만원에 이르고, 관광지 주변 음식값이 대도시보다 비싸다’는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로 휴가를 갔다 마음만 상했다’ ‘내 생애 마지막 강릉 여행이었다’ 등 상처 입은 마음이 곳곳에 드러났다. ‘봄철 산불로 피해를 본 강원도를 돕기 위해 여름휴가를 왔는데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후회하는 내용도 있었다.

반면 변화된 서비스로 ‘재미’를 본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속초 지역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은 지난해보다 54.7% 증가했다. 여기엔 야간 해수욕장이 한몫했다. 피서지로 바다를 찾지만 햇볕이 강한 대낮에 백사장을 밟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다. 야간에 바다를 찾는 피서객이 많은 이유다.

속초시는 13개의 고성능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구성된 조명탑 2기를 해변 중심부에 설치해 해수욕장 야간 개장을 시행했다. 야간 수영 허용구역을 150m 구간으로, 모래사장에서 30m를 수영경계선으로 정했다. 야광으로 된 안전 부표 설치와 함께 안전요원 50여명을 배치했다. 이에 힘입어 피서객들은 오후 9시까지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즐겼다. 덕분에 피서객의 호평과 주변 상가 활성화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대체로 해수욕장 백사장은 아침마다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한다. 어두운 밤 동안 피서객들이 돗자리에서부터 맥주캔과 페트병, 먹다 남은 음식물, 과자봉지, 물놀이 기구 등을 쓰레기로 남겨둔 채 그대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나 하나쯤이야’ 또는 피서지에서 흐트러진 마음이 원인이다.

하지만 밤 해변이 훤해지면서 달라진 것이 또 있다. 매년 골머리를 앓던 쓰레기 수거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해 45일의 개장 기간 쓰레기 수거량은 155t으로 일평균 3.4t을 기록했지만 지난달 5일부터 30일까지 수거된 쓰레기는 일평균 1.7t으로 감소했다.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덤’으로 얻은 셈이다. 우려됐던 큰 안전사고도 없이 ‘클린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속초해수욕장의 야간 개장이 주목을 받자 다른 지자체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범 해수욕장을 비롯한 백사장에 야외 풀장이 대거 등장했고 해수욕장별 축제도 마련됐다. 축제 프로그램에 물총싸움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도 당연하다. 워터파크와 호캉스(호텔+바캉스) 등 새로운 피서 문화에 질 수 없다는 의지와 노력이 담겨 있다. 바뀌지 않으면 바다 피서객은 점점 줄어들 게 뻔하다. 해수욕장의 또 다른 변신이 기대된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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