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연구소 실패를 허하라

국민일보

[데스크시각-한장희] 연구소 실패를 허하라

입력 2019-08-15 04:04

상황이 변해 일부 안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일본 아베 정부의 단순 도발에 초비상이 걸릴 정도로 우리 경제의 기초가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정부 부처들이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들도 미덥지 못하다. 자금 지원과 규제 완화로 요약되는 임시방편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영영 소재·부품 강국이 될 수 없는 걸까. 정부 대응을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혜안은 없어 보인다. 사태 후 고위 관료들은 대기업을 물고 늘어졌다.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수입을 택해 지금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중소기업이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대기업이 사주지 않았다”고 책임론을 좀 더 구체화했다. 물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 부족과 단기 이익 추구가 현 사태와 관련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책임의 무게로 따지면 정부가 훨씬 크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몇 년 전 ‘독일 히든챔피언(강소기업) 연수 프로그램’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를 뛰어넘겠다’는 2세 경영인부터 ‘소재·부품 강국 일본이 스승으로 여기는 독일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는 엔지니어 등 다양한 중소기업인들이 함께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처음엔 이들도 중소기업의 질적 도약이 어려운 이유로 대기업을 꼽았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대기업들이 단기 성과만 요구해 협력업체들은 오늘 배워 내일 써먹을 기술 위주로 직원들을 교육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던 이들이 독일 역시 중소기업의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기업의 보호 속에 성장하는 히든챔피언은 없다” “일부 대기업들이 납품 가격을 깎는 방법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는 독일 중소기업인들의 잇따른 토로에 적잖이 놀라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왜 독일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모델로 얘기하는 걸까. 결국은 시각차이이자 접근방식의 문제였다. 한국에서 상생은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돕는 의미로 쓰인다면 독일에선 말 그대로 동업자 관계, 즉 파트너십(partnership)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선 좀 더 싸게, 빨리 소재·부품 등을 공급하는 게 협력업체의 미덕이라면 독일에선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의 수준이 파트너십 지속을 위한 최우선 조건이었다. 히든챔피언들 역시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대기업이 협력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이 같은 독일의 현실을 확인한 중소기업인들의 좌절감은 더 커졌다. 대기업과 달리 한국 중소기업은 스스로 혁신역량을 키워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정부 돈으로 운영되는 이공계 연구기관이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모든 단계에서 중소기업과 함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응용기술연구소인 프라운호퍼연구소와 기초기술연구소인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이공계 연구기관 수백개가 전국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 같은 혁신 생태계가 “‘연구소의 실패’는 많지만 ‘시장의 실패’는 별로 없다”는 히든챔피언 신화의 배경이었던 셈이다.

물론 희망은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후 대학들이 ‘기술 방패’를 자처하고 나섰다. 카이스트(KAIST)가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자문단을 꾸린 데 이어 서울대 연세대도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위한 자문단을 구성했다. 자문단엔 절박한 기업들의 문의가 하루에 수십 건씩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100대 소재·부품 기술기업을 키우겠다고 한다.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중소기업이 자체 역량으로 연구기관들과 힘을 합쳐 혁신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정부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 기술력을 앞세운 일본의 경제보복이 불러온 한·일 경제전쟁의 결말이 국내 강소기업 육성으로 이어질 때에야만 진정한 한국의 승리라고 부를 수 있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