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장윤재] 이삭의 우물 ‘르호봇’

국민일보

[바이블시론-장윤재] 이삭의 우물 ‘르호봇’

입력 2019-08-16 03:59

창세기 26장에는 ‘이삭의 우물’ 이야기가 나온다. 이삭은 아버지 때부터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들자 블레셋 왕이 다스리는 그랄이라는 땅으로 이주했다. 거기는 팔레스타인의 곡창지대다.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수확을 거뒀다. 드디어 기근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재앙이 밀려왔다.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한 것이다. 그들은 이삭이 만들어낸 풍요의 근원을 막아버렸다. 아버지 아브라함 때 판 우물을 모두 메워버린 것이다. 당시 우물은 생명줄이었다. 그것을 흙으로 막아버렸다는 것은 이삭과 그의 가족이 곧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삭은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메워져 버린 우물가를 보며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빈손으로 떠났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어놓은 것보다 하나님이 새로 열어주시는 가능성을 더욱 믿었기에 하나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아마도 소년 시절 모리아 산에서 겪은 사건이 평생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창세기 22장에는 유명한 사건이 나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燔祭)로 잡아 바치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묵묵히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아들이 물어본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만,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잡아 바치라고 그의 믿음을 시험하였지만,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번제물을 준비하셨다고 믿었다. 아들의 가슴을 내려찍으려고 비수를 높이 쳐드는 순간, 결국 하나님이 지고 말았다.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이렇게 당신을 믿는데, 당신도 나를 끝까지 믿습니까?’ 하나님은 황급히 아브라함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칼을 떨군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번제를 드렸다. 이후에 아브라함은 이 일을 두고 ‘여호와이레’라 불렀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는 뜻이다.

이삭은 모리아 산 위에서 이 하나님의 준비를 온몸으로 체험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메워버리자 주저 없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우물을 팠다. 물론 블레셋 사람들은 그 새 우물을 다시 메우고 빼앗았다.

하지만 이삭의 우물 파기는 그치지 않았다.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 우물이 막히고,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 우물이 막히자 이삭은 또다시 새 우물을 팠다. 그러자 비로소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러자 이삭은 그 우물을 ‘르호봇’이라고 이름 지었다. ‘넓음’ 혹은 ‘넓은 곳’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숨 쉴 터전’, 넓은 생명의 공간을 열어주셨다는 의미다. 공동번역 성서처럼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을 활짝 열어주셨다’는 뜻이다.

내가 가진 어떤 것도, 내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어떤 것도 나를 최종적으로 지켜주지 못한다. 오직 한 가지, 나를 진정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준비하심을 믿고, 어디서든 내 삶의 자리에서 새 우물을 파고 또 파는 것이다. 그런 믿음과 열정으로 우물 파기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넓은 곳에 이르러 생명의 우물을 얻게 될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내 앞길을 활짝 열어주시어 ‘르호봇의 우물’을 얻게 될 것이다.

광복 74주년을 맞은 이 아침, 일본이 한국의 생명의 우물을 메워버리려 하는 이때, 우리 민족이 이삭처럼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굳게 믿고 계속 새 우물을 파서 자손만대에 광활한 생명의 터전을 물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장윤재(이화여대 교수·교목실장)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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