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대열 (11)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하염없이 북한 땅 바라봐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유대열 (11)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하염없이 북한 땅 바라봐

베이징행 기차에서 멀어지는 고향 보며 부모·형제 언제쯤 다시 만날까 생각

입력 2019-08-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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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열 목사가 1998년 1월 한국복음주의협회 조찬기도회에 초청돼 간증하고 있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들어서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속히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시내로 들어가 숨어야 했다. 그렇게 중국 지안시에 도착했다. 준비해 온 중국 옷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유학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 누가 봐도 중국 사람과 비슷한 차림새였다. 그리곤 기차역으로 갔다. 열차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1시쯤 베이징으로 출발하는 열차가 있었다. 당시 내겐 비상금으로 미화 100달러와 중국 돈 100위안이 있었다. 북한을 떠나기 전 중국에서 유학을 같이한 동생을 찾아갔을 때 그가 건네준 피 같은 돈이었다. 표를 산 뒤 열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하자 승강대로 나가 점점 멀어지는 압록강과 그 너머 북한 땅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언제 다시 저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형님 동생들을 만날 날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올랐다.

30대로 보이는 여성 검표원이 내게 다가왔다. 내 열차표를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가슴이 덜컹했다. 혹시 공안에게 데려가면 큰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치가 보이면 돈을 줘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검표원은 예상외로 상냥했다. “베이징까지 가려면 다른 열차표를 사야 한다”고 했다. 표를 잘못 산 것이었다. 나는 “몰라서 그랬다”면서 “지금이라도 방법을 알려주면 다시 사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열차원이 “괜찮다. 누군가 다시 이 문제를 갖고 물어보면 검표원이 이미 검열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중국도 북한과 같이 열차 공안원들의 검색이 심한데도 나는 무사히 베이징까지 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열차원 아가씨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려고 붙여주신 도움의 손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에서 벗어나 있는 게 있겠는가.

베이징역에 내린 난 베이징어언대학교로 향했다. 함께 유학했던 외국 친구들에게 당시 베이징 상황을 알아보면서 소개받은 일본인 여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만 알 뿐이었지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던 내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었다. 학교 교무처에서 물어봤지만 일본 이름밖에 모르는 터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근처 기숙사를 찾았다. 그의 이름을 물으며 수소문하던 내게 기숙사 관리원이 4층의 어느 방으로 가보라고 일러줬다.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그 일본인 학생이 문을 열어줬다. 그는 탈북하며 고생을 해 피골이 맞닿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유학 이야기를 꺼내며 설명하니 마침내 날 알아봤다.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칭 찐, 칭 찐(어서 들어오세요)”하며 나를 반겨줬다. 마주 앉은 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얼굴만 한참 바라봤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어디 갈 곳이 없을 테니 일단 내 방에서 며칠 쉬세요”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부터 난 그의 방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그는 다른 친구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가 말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도울 길이 전혀 없네요. 그저 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앞이 막막해진 내게 그는 봉투 하나를 건넸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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