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기대, 그리고 기다림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기대, 그리고 기다림

입력 2019-08-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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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가 사망하면 이단에 빠진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기대, 교주의 범죄가 밝혀져 구속되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기대, 시한부 종말의 그날이 지나가면 포기하고 가족 품으로 돌아오리라는 기대,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게 되리라는 기대, 이단 사이비 피해자 가족들의 이러한 기대는 기약 없는 오랜 기다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던 교주가 사망하면 과연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게 인정하는 순간,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따랐던 지난날 자신의 선택은 철저히 실패한 것이 돼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선택했던 나의 오류를 인정하는 부끄러움도 감수해야 한다. 어쩌면 차라리 인정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판단을 쉽게 할 수 있다. 똑똑할수록 이러한 자기합리화의 이유가 치밀하다. 신념과 현실이 충돌하는 인지 부조화의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시동을 건다. 즉 교주의 죽음을 신격화하거나 미화하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둘째, 범죄의 결과로 교주가 구속되면 망상으로부터 깨어나 현실을 자각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지만 교주의 범죄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범죄를 방조하거나 동조한 공범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보다 실패를 인정해야만 하는 창피함이 앞선다. 마침내 교주가 범죄의 결과로 교도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부당하게 정죄 받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기에 이른다. 합리적 상황 판단을 위한 ‘옳고 그름’의 잣대는 이미 사라지고 오직 비상식적인 교주를 향한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만 남게 된다. 결국, 교주의 석방을 기다리며 스스로 ‘희망 고문’을 시작한다.

셋째, 시한부 종말이 실패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종말의 날로 예정된 날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도, 이단 사이비 단체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재산과 관계를 거의 포기한 까닭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예도 있다. 혹은 교주가 변개한 교리를 애써 받아들여 새롭게 설정된 종말의 날에 다시 기대를 걸기도 한다.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교주는 성경과 자기가 한 말을 뒤집는 데 거침이 없다. 신도들은 교주가 제시하는 그럴듯한 종말 불발의 핑계가 맞는지 안 맞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순순히 수용한다. 반복되는 종말론의 실패와 계속되는 맹목적 추종으로, 사회가 공감하기 힘든 시한부 종말론 중독 증세가 나타난다.

넷째, 영생의 조건이라는 소위 ‘14만 4000명’이 되는 그날이 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인생 고민과 관계 갈등이 한 방에 해결될 수 있을까. 성경은 그날과 그때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는데 교주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며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신도들을 통제하고 착취한다. 하지만 최악은 조건부 종말론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달리 이단 교주는 14만 4000명 등의 특정한 기준을 영생의 필요조건으로 내세운다. 이를 위해 소중한 것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며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거짓말을 종교적으로 합리화시켜 인간성을 파괴한다. 문제는 14만 4000명이 넘었는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교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14만 4000명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고 신도들은 14만 4000명 안에 포함되기 위한 무한경쟁을 시작한다.

거짓말은 이단들의 운명적 특징이자 태생적 한계다. 이단들은 생존과 성장을 위해 거짓말을 합리화한다. 교주의 죽음과 구속을 설명하기 위해, 혹은 시한부·조건부 종말론의 불발을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로 무장한다. 죄의식은 없다. 거짓말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부정적 인식은 무시한 채, 사리사욕을 위해 거짓말을 강요하고 신도 통제와 착취를 위해 거짓말을 도구로 삼는다. 하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은 14만 4000명에 결코 속할 수 없으며 새 예루살렘 성에도 들어갈 수 없다고 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단언한다.

탁지일(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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