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관 출신 스타 셰프 “쉬운 일만 찾는 탈북민에 본보기 됐으면”

국민일보

옥류관 출신 스타 셰프 “쉬운 일만 찾는 탈북민에 본보기 됐으면”

[연중기획] ‘나 혼자 아닌 우리’ <5부> ②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입력 2019-08-20 04:03

윤종철(63·사진) 셰프가 내놓는 냉면 육수는 맛이 깊다. 정갈하고 담담하면서도 진하고 강하다. 겨자나 식초로 맛을 보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짜지도 맵지도 않지만, 한번 수저를 대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그간 먹어온 평양냉면과도 다른, 익숙한 동시에 이국적인 맛이다. 그 유명한 평양 옥류관에서 배운 솜씨다. 국민일보는 1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북한요리 전문점 ‘동무밥상’을 운영하는 윤씨를 만났다.

“처음엔 요리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북한에선 요리사가 천대받거든.” 그의 할아버지는 요리사였다. 무시받는 시선을 물려주기 싫었던 할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를 밤낮으로 공부시켜 당 간부로 길러냈다. 역설적이게도 윤씨가 요리를 배운 데는 아버지의 신분이 영향을 미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갓 18살이 되던 해 군에 입대한 윤씨는 영문도 모른 채 옥류관에 배치됐다. 아버지의 우수한 출신성분 때문이었다.

윤씨는 옥류관에서 신분을 감춘 채 요리법을 전수했다. 이왕 하는 것 잘해야 겠다는 생각에 새벽잠만 자면서 연습에 매진했다. 윤씨의 신분을 몰랐던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그를 후계자로 여길 정도였다. 윤씨가 두각을 드러내자 군은 4개월 뒤 그를 장성급 전용식당에 배치했다. 그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건 최고위 장성 16명뿐이었다.

10여년 뒤 제대한 윤씨는 발효공장에 배치받았다. 김일성 김정은 부자의 생일 외에 가동되는 날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이웃에서 사람이 굶어죽었다. 안 되겠다 싶어 가족을 둔 채 홀로 죽음을 각오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이어 2000년 10월, 몽골을 거쳐 김포공항에 입국했다.

한국에 온 지 20년이 지난 현재 윤씨는 널리 알려진 ‘스타 셰프’다. 6년 전 전문업체의 제안으로 요리강사와 팝업스토어를 열자 각종 방송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업체에서 인수한 그의 가게는 본래보다 3배로 크기를 확장했다. 1년째 그에게 직접 요리를 배우는 제자도 하나 있다. 론리플래닛 등 유명 여행안내서를 보고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도 있다.

윤씨는 식당을 연 뒤 젊은 탈북민 몇몇을 데려다 가르치려 했지만 대부분 하루 이틀 만에 일을 관두고 나갔다. 경상도 출신인 제자를 제외하고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중국 동포다. 윤씨는 “젊은 탈북민들이 당장 쉬운 일만 하려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신만의 능력을 길러야 성공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새로운 사회의 원리에 적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씨가 주방을 떠나지 않는 건 북한에서 건너온 이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설명이다. 윤씨는 “항상 주변에 일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얘길한다”면서 “남한 사회에서 항상 필요로 하는, 없을 때 아쉬워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 조효석 기자, 사진 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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