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장민] 이탈리아의 잃어버린 20년

국민일보

[경제시평-장민] 이탈리아의 잃어버린 20년

입력 2019-08-27 03:59

로마, 다빈치, 갈릴레오, 비발디에서 구치와 페라리까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서양역사와 문화의 핵심을 관통해온 세계 8위 경제력의 나라. 바로 이탈리아이다. 그런 이탈리아 경제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2000년 수준보다도 낮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에도 GDP 규모가 2007년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탈리아판 ‘잃어버린 20년’이다. 무엇이 이탈리아를 저성장의 늪에 빠뜨렸을까?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연금수령 연령 하향, 기본소득 지급 등을 밀어붙이고 있는 파퓰리즘 정권에서 파생되는 정치적 혼란은 논외로 하고 국제기구와 경제학자들이 분석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경쟁력 약화이다. 이탈리아 기업의 95%는 고용원 10명 미만인 중소기업이다. 대부분 가족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들 기업은 자본력의 한계로 연구·개발이나 IT 기술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족벌주의와 함께 능력보다는 충성심을 우선시하면서 경영능력이나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도 부족했다. 비교우위를 지닌 수출상품은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섬유, 의류, 신발, 자전거 등 저기술 분야임에 따라 글로벌 밸류 체인에도 적극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기술혁신과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 속에서 수출 경쟁력이 빠르게 약화되어 이탈리아가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중반 독일의 20% 수준에서 최근에는 12%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더욱이 IMF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수출구조는 중국과 가장 유사하고 수출경합품목도 60%에 달해 향후 수출 전망도 밝지 않다.

둘째로 지적되는 건 기업활동에 비우호적인 여건이다. 세계은행의 기업활동 수월성 평가에서 이탈리아는 계약실행항목에서 190개국 중 111위, 기업의 여신취득항목에선 112위에 머물렀다. 납세, 건축허가 등과 관련된 공공행정 효율성도 매우 낮다. 사법시스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34위로 평가된다. 구조개혁 지연으로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는 좀비기업이 전체 자본의 5분의 1, 기업투자의 4분의 1을 점유해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셋째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한 낮은 노동생산성이다. 이탈리아는 개별 기업단위가 아니라 산업별로 노조와 사용자단체가 해당 산업전체에 적용되는 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데 90% 이상의 근로자 임금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개별 기업의 생산성 등을 반영하지 않는 임금결정방식은 임금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같은 임금결정의 경직성으로 인해 현재 이탈리아의 단위노동비용은 독일에 비해 35%, 유로지역에 비해 30%나 높다. 높은 노동비용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이를 가격에 반영하는 대신 고용이나 투자를 줄이는 방법으로 대응하면서 중장기적인 경쟁력도 약화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중앙집중식으로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으로 인한 공교육의 실패이다. 중퇴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청년층의 25%가 NEET족(일할 의지가 없는 청년 무직자)이다. 25~34세 청년층의 대졸자 비율도 27%대로 OECD 평균인 44%대에 비해 매우 낮다. 이 같은 교육실패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탈리아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탈리아와 달리 반도체 등 고기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업들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의 강점이다. 반면 기업활동 여건이나 노동시장, 교육시스템 등은 우리도 개혁이 필요다.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강점은 계속 보완하면서 지켜나가고 약점은 시급히 개선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우리 경제규모가 2030년에는 이탈리아를 앞설 것이라는 OECD 전망도 우리의 노력이 전제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