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의 삶 너무 싫어 “난 목사 짓 절대 안해!”

국민일보

목사 아들의 삶 너무 싫어 “난 목사 짓 절대 안해!”

안호성 목사의 사자처럼 담대하라 <1>

입력 2019-08-29 00:05 수정 2019-08-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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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성 울산온양순복음교회 목사가 지난해 10월 경산중앙교회에서 개최된 특별새벽부흥회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현장에서 야성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사람 눈치를 보다 보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닌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15년 전 울산의 농어촌 지역에서 맨주먹으로 교회를 개척해 중형교회를 일군 안호성 울산온양순복음교회 목사의 목회 스토리를 통해 사자처럼 포효하는 메신저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부모님은 1973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버지는 9남매의 막내, 어머니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셨다. 두 분 모두 신앙의 1대였다. 결혼 후 누나가 태어났는데 그만 장에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에 걸리고 말았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곧 죽게 됐다. 당시 아버지는 서울 대조동 순복음신학교에 다니며 신학교 앞에서 신학생을 상대로 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갈 병원도 없게 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딸아이를 살려주시면 목회자로 살겠다고 서원했고 이후 누나는 기적적으로 회복됐다.

아버지는 순복음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회자가 없는 교회를 찾다가 충남 공주 탄천면에 있는 감리교회에 자원해 목회 첫발을 내디뎠다. 주일 예배만 드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감리교 신학을 다시 공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 협성대를 오가셨다.

이름 없는 시골 목회자였던 아버지는 전형적인 목회자이셨다.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밤늦도록 목회에만 집중하셨다. 어머니는 기도의 용사였다. 얼마나 금식기도를 자주 하셨는지, 어렸을 때 엄마는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건축의 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조그만 교회라도 부임하시면 교회를 건축하시곤 했다. 그래서 집보다 교회가 먼저였다. 사례비를 못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3남매는 어린이가 아니라 작은 목사처럼 살아야 했다.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내 이름은 호성이가 아니라 ‘목사 아들’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아니, 목사가 너무 싫었다. ‘목사는 무슨 놈의 목사. 난 절대로 목사 같은 짓은 안 할 거다.’

교인들의 기대치는 너무 높았다. 예배는 절대 빠지면 안 됐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교인들의 자녀와는 싸우면 안 됐다. 져주고 양보하는 게 일이었다. 여름성경학교 때 너무 갖고 싶은 물총 선물이 있었다. ‘하나님, 제발 저 물총을 갖게 해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정말 경품 추첨 때 물총을 뽑았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선생님이 물총을 뺏더니 옆에 친구에게 줬다. “넌, 목사님 아들이니 다른 친구한테 양보해라.” 어쩌면 목회자의 자식으로 살아야만 하는 숙명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반항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는 4곳을 다녔는데, 5학년 때부터 충북 청원에 정착했다. 시골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내가 목회자 아들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삐딱하게 살고 싶어도 그렇게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위선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

교회와 거리가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던 청주 청석고에 진학하면서부터 탈선이 시작됐다. ‘일진’들과 어울려 다녔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싸움을 즐겨 했다. 그래도 담배와 술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나름 철저히 지켰다. 내신성적은 엉망이었고 모의고사를 보면 바닥이었다.

수학능력시험이 나를 살렸다. 나는 수능 1세대다. 여름과 겨울 2번 시험을 치렀다. 어렸을 때 신문과 책을 많이 있었던 게 도움이 됐는지, 수능에서 좋은 성적이 나왔다. 94년 충북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정치외교라는 말이 왠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생활은 내게 자유를 선사했다. 승부욕에 술을 많이 먹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후배 상관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홍경민이라는 후배가 눈앞에 나타났다.

안호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약력=1975년 서울 출생,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울 순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 석사. 2004년 울산온양순복음교회 개척. 저서 ‘마음이 없으면 핑계만 보이고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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