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진실한 상상만이 사막을 건널 수 있다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진실한 상상만이 사막을 건널 수 있다

입력 2019-08-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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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와 설교자의 공통점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들의 언어를 사용하면 부정적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누군가 ‘저 사람 소설 쓴다’고 하면 과장하거나 없는 말을 지어낸다는 뜻이 된다. 누군가 ‘나에게 설교하지 마’라고 하면 이미 아는 얘기인데, 자꾸 잔소리처럼 다그친다는 느낌이 들 때 중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책이 아닌 현실에서 만나는 소설 같은 얘기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고 예배당을 벗어난 설교는 상대방의 상황도 이해하지 못하는 도덕 교과서 같은 말처럼 들린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만약 소설가와 설교자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은 정글과 같아질 것이다. 상상과 진실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생존 너머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삶이란 빵만 먹고 빵을 쟁취한 이들만 누리는 축제일 수 없다. 빵을 먹고 난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모든 사람이 제일 좋은 빵을 만들 순 없다. 모든 사람이 직접 빵을 만들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론 누군가 만들어준 빵을 먹을 수도 있고 지금은 빵을 살 여유조차 없어도 훗날 다른 사람들을 돕는 후원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소설가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는 꿈을 꾸게 해주고, 설교자는 우리가 왜 빵만으로 살 수 없는지를 일깨워 준다.

이사야 11장에는 소설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나온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고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친다.(사 11:6~8) 그런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지자의 예언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다윗 왕조는 엄중한 심판을 받았고 앗수르의 침략이 실패한 후에도 주변 나라들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선지자는 이런 현실 너머의 예언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눈을 돌린다. 로마의 지배와 종교 권력의 타락 속에서 구원의 빛이 요원해 보일 때,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다.(막 1:15)

여자와 아이들을 셈하지 않던 시절,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시고(마 18:3) 부활의 증인으로 첫 번째 선택한 사람이 여자였다(요 20:11~18). 현실에 갇혀 절망과 원망으로 시절을 허비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오늘의 삶으로 소환해 기어이 그 삶을 경험케 하셨다.

삶은 사막과 같다.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이 멈춤을 모르고 마실 물은 항상 부족한 사막처럼 현실은 늘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온 힘을 다해야 쓰러지지 않는 절박함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신기루를 보여주며 다 괜찮아질 거라는 일시적 위로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비관적 자세로는 사막을 건널 수 없다.

삶 또한 그러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는 현실적 자세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려는 진실의 눈이 필요하다. 허상과 절망으로 허기진 배를 생명과 소망으로 가득 찬 이야기의 만찬으로 채워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앞서간 이들이 어떻게 이 사막을 건넜으며, 또 다른 사막의 땅에 새로운 문명을 일궈냈는지를 들려주는 사람들, 이 사막의 시간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 여정을 함께 걷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주는 사람들, 사막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며 사막 너머 우리를 기다리는 약속의 땅이 있음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소리를 꽤 여러 해 동안 들어왔다. 교회 밖 세상에서도 어느 세대 할 것 없이 각자가 처한 어려움으로 세상 사는 마음들이 갈수록 각박해진다. 사막 같은 현실에 필요한 건 진실한 상상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소설가와 설교자를 세상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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